매거진 내셔널트러스트 32호 [집중과조명]- 한국의 도시농업

③ 차가운 철과 뜨거운 예술 사이에 따뜻한 옥상 소작농들의 이야기-문래도시 텃밭

글: 최영식/ 문래동 텃밭 이장

 

 

[집중과 조명] - 한국의 도시농업

① 현대사회와 도시농업 (오충현/ 동국대학교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② 도시농업의 해외 사례와 동향 (이은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③ 차가운 철과 뜨거운 예술 사이에 따뜻한 옥상 소작농들의 이야기-문래도시 텃밭 (최영식/ 문래동 텃밭 이장)


 


왜 도시텃밭를 시작한 것인가?

도시농사는 도시 내 유휴지, 옥상 등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목적도 다양하다. 우리 텃밭이 자리한 문래동 일대는 6~70년대부터 종일 그렁그렁 철 깎는 소리, 용접불꽃이 튀기는 철가공소와 크고 작은 원형, 사각형의 철재들이 기하학적으로 쌓여 있는 철재상가 밀집지역이다. 2000년 중반부터는 공장들의 외곽 이전, 철강 경기 하락 등으로 빈 2,3층 공간에 상대적으로 값싼 임대료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현재는 200명이 넘는 작가들이 문래창작촌을 형성하면서 철공소들과 색다른 동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차가운 철과 뜨거운 예술이라는 이질적인 만남 속에서 몇 몇 작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와 공존의 방식을 찾기 위한 얘기가 오가 던 중 텃밭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예술로 농사를 짓다?

2011.2월 생각을 같이 하는 예술가, 주민, 철공소엔지니어,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텃밭’ ‘사이좋은 텃밭’ ‘보기 좋은 텃밭’을 목표로 회색 도시 안에 흙냄새와 사람냄새를 찾아 나섰다. 작가들이 세 들어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건물주들을 접촉하여 보니 대부분 3,40년된 노후 건물이라 취지는 이해하지만 하중, 누수, 사용 기한 문제 등으로 텃밭 찾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쓰레기 더미에 쌓인 60여평 남짓한 옥상을 치우고 소박한 도시 소작농이 되었다.

2011년 5월 5일  <예술로 농사를 짓자>는 깃발을 꽂고 시농제로 첫 삽을 떴다.


이곳은 수십 년 동안 쇠쟁이들이 모여 터전을 잡고, 근자에는 예술가들도 터를 잡았으니, 다르면서 같은, 같으면서도 다른 삶의 터전에 작은 옥상텃밭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자그마한 텃밭농사가 여기 문래동에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지혜를 주시고, 저희들의 작은 시작이 온 세상에 창대하게 퍼지기를... < 시농제 축문 중에서>


주변 이웃들과 한 바탕 잔치를 벌리고, 농사를 통해서 도심 속 이질적인 사람들 간에 커뮤니티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농사는 예술로 짓는 게 아녀. 정성이제...>라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올라와 푸릇한 작물들을 보고 기분이 상쾌해 진다면 잘 심었거나 막 심었거나 농사는 분명 예술이다.


텃밭 만들기 과정


운영방칙

특별한 원칙을 정하지 않고 누구라도 참여 가능한 느슨한 연대 속에 운영된다.

현재 3~40여명이 들쑥날쑥 참여하고 있으며, 월 2회 워크숍과 SNS를 통해 수시 모임을 논의한다. 워크숍은 텃밭 가꾸기와 액비, 난황유 만들기, 수확물로 요리해보기(방울토마토 피클, 모히또, 통마늘 장아찌 담기 등), 텃밭주머니 그림그리기, 천연양초 만들기, 영화보기 등 참여자들의 제안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워크숍 후 뒤풀이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주제로 얘깃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시농제와 김장하는 날은 동내 철공소분들과 작가들을 초대하여 텃밭잔치를 연다. 농사일이나 잔치 공연에 어린이들도 적극 참여시킨다. 올 8월에는 강풍으로 농막용 비닐하우스가 소실되어, 어린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 원하는 농막을 설계토록 하였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하여 포장마차형 농막을 만드는 중이다.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시도

한 통지만 꿀벌도 키운다. 긴좌의 벌꿀 유명하다던데 우리도 해볼까? 대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린이들도 오는 데 위험하다는 반론이 나오면 벌통은 옥상 위 옥탑에 놓고 관리자가 없을 땐 사다리를 치우는 것으로 해결방안을 찾는다. 벌 전문가를 불러 워크숍을 하고, 꿀 수확보다는 도심에서 벌이 생존 할 수 있을까, 라든지 벌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 생태계에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가를 알리는데 더 의미를 둔다.

지렁이를 키우기도 했다. 텃밭에서 나온 작물을 유기농 카페에 공급하고, 그곳에서 남겨진 음식물을 가져다가 지렁이의 사료로 사용하고 지렁이 분변토는 텃밭거름으로 사용하는 식으로 의미부여를 한다.

농한기에는 ‘도시농부학교’을 열어 간단한 농사기술뿐만 아니라, 식량 주권, GMO, 토종종자, 푸드 마일리지문제 등 도시인들 알아야 할 이슈를 통해 농업에 대한 이해, 소비 형태의 변화를 기대한다. 빗물 저금통도 만들어 보고 가끔은 마르쉐, 하자센터의 달시장 등 ‘도시농부장터’에도 참여한다.

젊은 농부

참여자들이 원하는 것들은 공간이 허용하는 한 다 심는다

 현재 30-40여 가지의 작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상추 등 엽채류 외에도 딸기, 토마토, 야콘, 돼지감자, 블루베리, 땅콩, 수세미, 바질 등 허브류는 물론, 잡초라 부르는 것들도 작물을 망치지 않는 한 홀대하지 않는다. 바람에 날려 왔거나 모종흙에 딸려온 까마중, 쇠비름, 왕골 이런 것들이 함께 자란다. 

후쿠시마에서 원전지역에서 가져온 목화도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후쿠시마 목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단체와 수확한 솜에서 실을 뽑아 팔찌, 연실들을 만들어 탈핵운동 등 이벤트를 진행 할 계획이다.


일종의 태평농법

감자 등 어쩔 수 없는 작물이외는 수확 후에도 그대로 두어 자연사나 안락사를 시킨다.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과정을 대부분 보여준다. 쑥갓, 부추, 치커리, 메밀, 허브 꽃들이 어우러져 옥탑에 키우는 벌들에게 일용한 양식을 얻는 텃밭 역할도 한다. 오는 사람들에게 작물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식물도감 역할도 하고 자가 채종도 하는 우리만의 의미있는 농사법이다.  

커뮤니티 모임

심기는 우리가 심으나 수확은 누가?

함께 심고, 가꾸지만 월 2회 워크숍 때 소비하고 나면 누가 수확하는지는 모르고 알려고도 않는다.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온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가 있을 거라는 유쾌한 상상이 더 배부르다.


텃밭으로 도시의 옥상을 점령하자!

서울에는 축구장 3만개 정도의 옥상이 있다고 한다. 비어 있거나 쓰레기장이거나 아니면 조경된 상태로 말이다. 누구나의 관심사인 먹거리를 스스로 생산해 보는 텃밭은 도심에서 공동체를 찾는 좋은 플랫폼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옆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내달리는 적대적 경쟁사회, 돈 중심의 사회로 내몰리고 있다. 둘러보는 원탁사회가 아니라 내려 보거나 올려보는 사다리형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웃간 층간 소음문제로 살인을 하고, 옆집사람이 굶어 죽어도 모르는 무연사회에 살고 있다. 잊어버린 우리의 이웃들을 옥상 텃밭에서 호명하는 것은 어떨까?

먹거리로부터 시작하여 육아,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마을살이에 대하여 자주적, 자율적으로 해결해가면 3만개의 풀뿌리 공동체가 가능한 셈이다. 비어 있는 옥상을 함께 점거하여 텃밭으로 만들어보자. 텃밭의 작물들이 파릇한 모습으로 옥상에 올라와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손잡고 땀 흘리며 마을살이 얘기로 한 상씩들 차려 먹고 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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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한국내셔널트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