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


6 인문학강의가 진행된 25일, 전국이 장마권에 들었다. 일기예보는 당일 곳에 따라 폭우를 예보하고 있었다. 기상청 예보는 행사 시작 며칠 전부터 인문학 강의의 강행과 취소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 6월 망우리 인문학 강의는 홍익대부속고등학교 내셔널트러스트 동아리 학생들이 참여를 신청한 상태였다. 학생들이 망우리 인문학 강의를 접할 기회가 날아가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인문학 강의 당일은 간간히 비를 뿌렸다. 예보대로 폭우가 내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더운 날씨보다 훨씬 괜찮은 편이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위원회 김영식 위원장(작가)이 답사 시작에 앞서 망우리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장마비가 가끔 뿌리는 날씨, 청소년들까지 참여한 가운데 망우리공원 인문학강의가 시작됐다.


망우리공원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소파 방정환

참석자들 중 일부가 아직은 앳띤 청소년들이기에 망우리에서 가장 친근하게 다가 온 인물은, 단연 소파 방정환 선생인 듯 싶었다. 다른 묘역에서 보인 진지한 태도는 찾아 볼 수 없고 천진하게 장난까지 친다. 방정환 선생하면 생각나는 게 무어냐는 김영식 작가의 질문에 이들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어린이날이요.”

변성기가 지난 굵은 목소리로 어린이날을 연호하는 게 그들도 우스웠던 모양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킥킥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어린 티를 벗지 않은 청소년들이기에 소파 방정환 선생은 망우리공원에서 가장 친근한 분이다.


김영식 작가는 방정환 묘의 조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망우리에서 가장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방정환의 묘는, 1931년 방정환 사망후 홍제동에서 화장후 납골당에 안치돼 있다가 1936년 망우리 이곳에 안장된 것으로 전한다. 묘비 앞면에는 선여심동(仙如心童), 무동의이린어, 묘지환정방파소라고 적혀 있는데, 청소년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알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김영식 작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방법을 설명하고 비문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글씨는 당대 명필이며 독립운동가인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썼습니다. 오세창 선생은 손병희 선생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한 33인이며, 방정환 선생은 손병희 선생의 셋째 사위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묘비를 쓰게 되었고, 묘비를 쓰신 오세창 선생도 현재 망우리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소파 방정환(1899~1931)


살아서의 인연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모양이다. 소파 방정환과 인연이 있는 인물중 망우리공원에 묻힌 분이 또 계신다. 소파가 1928년 개벽사를 운영하며 주최한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계기로 등장한 한국화단의 거두 이인성이었다. 소파 방정환이 부재했다면 과연 화가로서 이인성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었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소파의 연인

아동문학가나 아동을 위한 운동가로 잘 알려진 소파 방정환. 하지만 김영식 작가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소개한다.

“...소파 방정환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물론 소파가 손병희 선생의 셋째 따님과 결혼 후, 알게 된 인연이었기에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돼버렸죠. 그 연인의 이름은 신준려(신줄리아, 신형숙)3·1운동 당시, 이화학당 교사로 재직하다 투옥되어 7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한 여성입니다. 1920년 잡지 [신여자]를 기획했는데, 당시 편집의 귀재로 평판이 높던 방정환을 편집고문으로 위촉하며 사귀게 된 것입니다...”

            

아동문학가로 알려진 소파는 당대 유명 출판인이자 언론인이며 베스트셀러 잡지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당시 소파의 글에서 신준려(줄리아)는 이니셜 ‘S'로 표기돼 [개벽] 4호의 추창수필 [秋窓隨筆]에 등장한다.

...1020, 등불을 가까이하고 독보(구니키다 돗포)의 병상록을 읽다가 언뜻 S를 생각하고 한참이나 멀거니 앉아 있었다. 독보가 말한 밭 있는 곳에 반드시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사는 곳에 반드시 연애가 있다라고 한 그 구절 끝에 왜 이런 구절이 없는가 한다. ‘연애가 있는 곳에 반드시 실연이 동거한다. 아아, 인정의 무상함을 지금 새로 느끼는바 아니지만, S의 사랑을 노래하는 그 입으로서 어느 때일지 실연의 애가 나오지 아니할까아아, 사람 그리운 가을 만유가 잠든 야밤에 창밖에는 불어가는 가을 소리가 처연히 들리는데 부질없는 벌레가 잠자던 나를 또 울리는 구나.

당시 소파의 나이 22세 그리고 줄리아 23세로 뜨거운 사랑을 품었던 사이였지만, 소파는 손병희의 3녀와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둔 처지였다. 결국 두 사람의 짧고도 아쉬운 사랑은 소파의 도쿄 유학과 줄리아의 미국유학으로 영영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소파 사망한 후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 방운영씨는 방정환의 묘역을 참배하는 양장 차림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다가서는 운용씨에게 유족인지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조용히 목례를 하고 멀어져 갔다. 후에 방운용씨는 방정환의 지인을 통해 인상착의를 확인하고 그녀가 바로 줄리아였음을 알게 된다.

소파의 묘비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의동무 소파 방정환의 묘'라고 표기돼 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훗날 두 사람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어린이를 위한 사랑으로 승화됐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김영식 작가는 "짧은 인생을 살다간 소파의 활동에 대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혹은 아동문학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다방면에 걸쳐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다"고 언급한다. 소파는 아동문학가 이전에 출판인이자 언론인이었으며 공전의 베스트셀러 잡지인 [학생], [신여성], [혜성], [개벽], [별건곤]등에 발행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소파가 선택한 새로운 사랑

소파가 출판인이자 언론인으로 눈부시게 활약을 펼쳤다지만 묘비에 새겨진 대로 방정환은 어린이의 동무이다. 때문에 성인 누구나 어린시절을 지나왔기에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망우리공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단연 소파 방정환 선생이십니다. 종래 애들’, ‘애놈등으로 불리던 것을 1920[개벽]지에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192251어린이의 날을 발기 선포도 하셨고, 번안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발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1923년 개벽사에서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합니다. 잡지 [어린이]를 통해서 일본노래와 어른들 민요밖에 없던 시절, 동요운동도 벌이셨습니다. 당시 어린이에 노랫말을 기고한 어린이들 중, 이후 아동문학가나 시인으로 성장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소파가 발행한 잡지 [어린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동문학가와 시인으로 성장했다.


김영식 작가의 말대로 [오빠생각]은 최순애가 11세에 [고향의 봄]15세의 이원수가 어린이에 응모해서 선정된 노랫말이다. 마산소년 이원수와 수원소녀 최순애는 어린이를 계기로 펜팔친구가 되었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약속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펜팔한 지, 7년 후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이원수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원수가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구속돼 1년간 복역을 했기 때문이었다. 최순애의 집안에서도 이원수와의 결혼을 반대하며 다른 혼처를 권했으나 그녀는 완강히 거부한다. 그리고 이원수가 석방되자마자 바로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오빠생각]은 최순애가 11세에 [고향의 봄]은 15세의 이원수가 어린이에 응모해서 선정된 노랫말이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이밖에도 윤극영의 [설날][반달]을 비롯해, [고드름(유지영 작)], [따오기(한정동 작)], [봄편지(서덕출)]등도 모두 어린이를 통해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상황에서 어린이를 위한 잡지 간행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소파는 기성세대의 변절, 무기력, 분열, 좌절감 등을 신세대에 대한 기대로 전환했다. 김영식 작가에 따르면, 소파는 어린이를 장차 조선독립의 역군이 될 인재를 키우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잡지 [어린이]는 일제의 검열에 걸려 기사가 삭제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때마다 소파는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고요. [왜정인물 1]에는 일본 경찰이 작성한 방정환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손병희의 3()용화의 남편이고 천도교이 중요임무를 전담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리고 키는 52촌에 둥근 얼굴이고, 까만 피부에 비만이라는 기록까지 나오는데, ‘배일사상을 가지고 있고 불온한 행동을 할 우려가 있음이라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김영식 작가에 따르면 소파 방정환 선생은 동화구연가로도 유명하다.

이화여자보통학교에서 전교 학생들에게 산드룡(신데렐라의 불어 발음)’을 이야기할 때, 학생들은 눈물이 줄줄 흘러 저고리에 비 오듯 하는 걸 씻지도 않고 들을 정도였고, 교사들마저 눈물을 훔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신데렐라가 의붓어머니에게 두들겨 맞는 구절에 이르자 여학생들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상갓집 같이 일제히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과 함께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던 후배 최신복 선생에 따르면, 소파의 강연회에 입회했던 순사가 소파의 강연에 감동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방정환을 선생으로 모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망우리공원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그와 나 사이를 걷다'의 저자 김영식 작가


김영식 작가가 언급한 최신복 선생은 동아일보사 수원지국 기자에서 소파의 부탁을 받고 1929년 개벽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훗날 무덤도 없이 홍제동 납골당에 안치된 소파의 유골을 윤석중, 마해송 등과 함께 지금의 망우리공원에 모신다. 그 역시 194538세의 젊은 나이에 소파와 마찬가지로 과로로 유명을 달리 하는데, 방정환의 곁에 묻어 달라 유언했다. 최신복은 그가 죽기 전, 1939년 부친이 사망하자 수원의 선산을 놔두고 망우리공원 소파의 아래쪽에 묘를 썼다. 소파를 더 자주 찾아뵙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942년 모친이 사망하자 역시 망우리공원 조부의 곁에 안장하였고, 자신의 갓난아기가 죽자 그 곁에 묻은 것으로 전한다. 이로써 소파를 존경했던 최신복으로 인해 3대가 망우리공원 소파의 묘 근처에 잠들게 된다.

소파가 사망한 것은 1931년이었다. 그는 각종 강연, 어린이 관련 행사기획, 집필, 잡지 간행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중 과로로 쓰러진다. 고혈압에 신장염이었으나 당시 의료기술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다. 김영식 작가는 병상의 소파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린이들을 잘 부탁한다.’말했다며 동화와도 같은 마지막 유언을 전했다.

여보게, 밖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가 와서 검정 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주게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남긴 것

훌륭한 인물의 업적은 인물과 업적의 내용에 가려져 그 의도나 동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동기가 드러난다 한들, 표면적인 동기와 당사자가 결심을 품게 된 내재적 동기는 다를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은 소파 방정환과 줄리아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향후 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었다고 언급했다. 아내와 처자를 둔 소파의 처지였기에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 모두 해외 유학으로 관계가 정리된다. 요즘 드라마 형식을 빌리자면 불륜과 막장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유학이 결코 자발적 결정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역시 과하지 않다. 하지만 이원수 선생의 말처럼 소파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내재적 동기로 작용했고,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어린이 운동 투신의 표면적 동기와 분명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소파가 줄리아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대상을 달리할 뿐, 소파의 삶 내내 현재 진행형이었고, 모든 사랑이 그렇듯 그 완성을 갈구하게 된다. [어린이]를 통해 등단한 아동문학가 이원수와 최순애의 결혼은 소파가 사망한 지 5년 후인 1936년의 일이다. 하지만 얼굴도 서로 알지 못했고,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환경,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룬 운명같은 사랑은, 살아 생전 소파의 실천적 사랑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소파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대상만을 달리한 채, 그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임종에 가까워질 때, ‘어린이들을 잘 부탁한다.’며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사랑한 대상에 대한 애틋함을 나타낸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하지 못 할 두려움의 대상이며 생물학적 기능의 종료 상태이다. 하지만 소파였기에,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정서적으로 유약한 어린이들에게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여보게, 밖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가 와서 검정 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주게

소파는 어린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동화와도 같은 다른 세계 어디로 떠나가는 것이며, 마치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가방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소파가 배역에 충실한 연기자같이 검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떠나면서 미완의 사랑은 그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어린이를 위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성사시키는 마침표가 찍어진 것이다.

 


망우리공원 보전 '같이가치' 모금 참여하기: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24277


자료참조 '그와 나 사이를 걷다' (김영식 저/호메로스/201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