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콕, 내셔널트러스트가
보전하는 영화 속 마을: 해리포터를 만나러 영국으로 고고!

 

 

영국 내셔널트러스트가 지키고 있는 자연과 문화유산 중에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답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유독이 빼어난 곳을 꼽으라면 레이콕(Lacock)이란 마을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유일한 ‘내셔널트러스트 마을’인 레이콕은 마을 전체가 내셔널트러스트의 소유다. 중세마을의 풍경이 마치 냉동된 듯이 남아 있고 그에 상응하는 일상 문화가 온전히 보전되어 . 덕택에 레이콕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헤리포터의 촬영세트가 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레이콕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17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역사도시 바스(Bath)인근의 전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동편에 있는 레이콕 사원이 13세기에 지어지면서 사원의 장원에 딸린 일꾼들이 거주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되었다. 마을의 건축물은 750여년의 역사를 머금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세기를 살아온 흔적들이 아기자기하게 새겨져 있다.


레이콕 사원의 건립자는 헨리 3세 시절 솔즈베리(Salisbury) 백작부인인 엘라(Ela)라는 사람이다. 남편 윌리암 롱제스피(William Longespee)는 헨리 2세의 서자로서 권리장전(Magna Carta) 체결에 참여했던 막강한 인물이었다. 엘라는 함께 시간을 보낸 남편의 마음 속에 있던 신앙적 시설의 하나로 레이콕 사원을 건립했다. 건립 당시 영국 왕실은 각종 건축 부자재를 하사했다.


여자 수도원인 레이콕 사원에는 15~25명 남짓한 수녀가 있었지만 가사나 구제활동이 많아지면서 평수녀(lay sisters)가 급격히 늘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장원에 속한 소작농이었다. 사원과 영주는 이들에게 많은 시혜를 베풀었는데, 당시로선 그 평판이 인근에 자자했다. 레이콕의 마을 공동체가 오래 동안 지켜진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와 풍족한 농토 덕분에 레이콕은 중세 내내 양모 생산지로 유명했다.

 

 

 


레이콕 마을을 만들고 지탱해온 레이콕 사원은, 헨리 8세가 전국의 수도원 376개를 철폐할 때인 1595년, 궁중의 요직을 맡고 있던 윌리암 샤링톤(William Sharington)에게 불하되었다. 부유한 노폭가문(Norfolk Family) 출신인 윌리암은 일찍이 이탈리아를 방문해 깊은 감명을 받을 정도로 출중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원의 이층만 주거용으로 바꾸고 회랑이 있는 일층의 중세풍 사원 공간은 그대로 보존했다. 아울러 8각형 3층탑과 르네상스식 굴뚝 등을 첨가하여 건물의 미관도 향상시켰다.


그러나 자식이 없었던 윌리암은 남자 형제인 헨리경(Sir Henry)에게 레이콕의 소유권을 넘겼다. 그리고 헨리의 막내 딸 올리버(Olive)가 존 탈보트 경(John Talbot) 집안으로 시집을 가면서 레이콕은 탈보트 가문의 소유로 다시 넘어갔다. 레이콕 사원은 그 이후 주인의 취향에 따라 늘 변경되었다. 특히 1750년대 존 아이보리 탈보트(John Ivory Talbot)가 60여 년 간 주인으로 사는 동안 사원은 고딕(Gothick) 풍으로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고풍스러운 모습은 이 때 꾸며진 것이다.


18세기 이후 레이콕의 모습은 그대로 멈추어 있다. 이는 소유주인 탈보트 가문이 개발의 압력을 줄곧 막아왔던 노력의 결과다. 철도가 마을근방으로 통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레이콕은 산업혁명의 열풍으로 부터 비켜설 수 있었다. 사각 형태의 도로를 따라 건물이 배열된 마을의 구조와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보전을 위한 바로 이러한 노력의 소산이다.

 

 

19세기 중반 레이콕 사원은 근대 사진술을 탄생시킨 산실이었다. 1835년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윌리암 헨리 폭스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는 사원 1층의 격자형 창문을 통해 비춰진 거꾸로 선 그림자를 네거티브(음화)로 찍는 데 성공했다. 그전에 그는 화학처리 한 그림종이에 물체를 얹어 햇볕을 쪼여 모양을 본뜬 뒤 이를 다시 화학처리 하여 본래 모양을 구현하는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다. 이 기술과 1835년의 네거티브 촬영 기술을 합쳐, 그는 1840년에 근대 사진의 원형인‘네가 포지법’을 발명했다. 레이콕 사원 입구엔 근대 사진의 역사를 보여주는 ‘폭스 탈보트 박물관’이 있다.


이러한 이력을 간직한 레이콕은 20세기 들어 소유주인 탈보트 가문이 계속 유지 관리하기가 힘든 상황을 맞게 되었다. 경제력의 약화, 과중한 세금,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영국의 전통 귀족들은 보유한 대저택이나 장원을 유지하기가 벅차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고율의 상속세는 재산을 보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속조차 힘들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정부는 내셔널트러스트에게 재산을 증여하면, 소유권은 내셔널트러스트로 넘어가더라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원 소유주가 계속 거주하도록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많은 대저택들이 이렇게 해서 ‘국민을 위한 영구보전’을 전제로 내셔널트러스트로 증여되었다. 레이콕의 경우도, 1944년 당시 소유주였던 마틸다 탈보트 여사에 의해 사원과 함께 마을 전체가 내셔널트러스트로 기증되었다. 탈보트 집안의 사람들은 아직도 사원의 일부에서 계속 살고 있다.

 

레이콕 마을의 전경

 

레이콕 마을에는 약 86 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한 주택 등을 임대하여 사는 세입자들이다. 이들을 받아드릴 때 내셔널트러스트는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또한 건물의 이용이나 거주하는 방식에 대해 서약을 받는다. 세입자를 뽑을 때 특히 마을 사람들의 후손들이 우대를 받는다. 이는 본래 살았던 사람들이 마을 보전에 더 적극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말하자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직계 자손들이 집과 마을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조건으로 임대하여 살게 함으로써 마을의 건축물과 마을의 생활습속을 함께 보전해 가는 것이 내셔널트러스트가 레이콕을 지키는 비법인 셈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세입자들이 내는 임대료에서 마을관리 경비의 60% 이상을 충당하고 있다.

 

 

 

- 글: 조명래 | 단국대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 이 글은 2009년 여름에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 12호를 통해 소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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