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다. 집에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논두렁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음을 나중서 알았다. 개구리밥을 손으로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이. 바람에 일렁이는 벼의 물결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추수해 쌓아놓은 노적가리 위에서 구를 수 있었던 것이. 꽝꽝 언 논에서 썰매를 탈 수 있었던 것이 축복이었음을 알았다. 

뒷집과는 담을 헐어 하나의 낮은 담을 사이로 하고 살았다. 까치발 높이의 담 너머론 늦잠 잔 엄마를 대신해 김 모락모락 나는 밥공기가 건네지기도 하고 부침개가 냄새와 동시에 넘어오기도 했다. 엄마도 마실 가고 오빠와 동생도 골목으로 놀러나간 날 마루에 혼자 앉아 집을 보고 있으면 앞문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와 뒷문으로 우르르 달려 나가곤 했다. 그게 지름길이었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에게도 도심 속에서 고향과 같은 마을을 주고 싶어 성미산마을로 이사왔다. ‘넌고향이어디니?’ 물음에 서울이요’ 답하는 아이들은 고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기 때문이다. 둘째가 태어나던 해 세 살 된 큰 아이를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며 인연을 맺게 된 성미산마을. 아이들은 마을의 품에서 자라 어느덧 아홉 살 일곱 살이 되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어른들이 내 아이들의 이름이 뭔지, 나이는 몇인지, 부모는 누군지, 사는 곳은 어딘지 안다는 건 참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렇게 이름이라도 불러주고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 관심 주는 관계를 맺어준 게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큰 선물을 한 거 같다는 생각이다.

마을사람 중 누가 제일 좋아?”

몇 년 전 둘째 아이 어린이집 등원 길에 물은 적이 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답 했었다.

. 마을사람 다 좋아.”

 

성미산마을과 성미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성미산마을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다. 행정구역상의 명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미산 정상에 배수지를 만들고 아파트를 지으려는 시도에 맞서 성미산을 지켜내는 주민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밖에서 붙여준 이름이기 때문이다. 성미산마을이 어디냐고, 구성 주민들은 몇이냐고, 지나가는 누굴 잡고 물어보든 같지 않은 대답을 할 게 뻔하다.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마을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

십오 년 전.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아이들을 키워보겠다는 사람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아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방과 후 어린이집을 만들고 건강과 환경에 좋을 먹을 거리를 생각하며 생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협동의 힘으로 2001년부터 삼 년여에 걸친 싸움 끝에 성미산을 지켜냈다.

벌목 당시의 성미산

전설처럼 내려오는 성미산 싸움 얘기들은 참 감동적이다. 기습적으로 산의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막기 위해 산 정상에 천막을 치고 조를 짜서 지켰다. 명절에도 산 위에 공동 차례상을 차리며 산을 비우지 않았다. 포클레인 삽날을 가로막고 전기톱날에 몸을 던지는 물리적 저항을 했다. 그러는 한편 성미산 음악회 등을 통해 성미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외부에 전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공청회를 열어 배수지 공사가 필요하지 않음을 객관적 수치로도 밝혀냈다. 그리고 마침내는 지켜냈다.

되살아난 성미산 


주민들은 성미산을 지켜내며 산만 지켜낸 게 아니었다. 겨울 혹한 천막 안에서 의지한 건 작은 갈탄 난로 하나가 아니라 서로의 체온이고 열정이었다. 천막 안에서 나눈 얘기들은, 함께 꾼 꿈들은 이후 현실로 하나하나 빛을 발하고 있다. 대안학교, 마을카페, 공동체방송, 마을재사용가게, 마을극장 등을 만들었다. 이제 지역화폐가 그 첫발을 떼고 있으며 4월이면 마을식당도 문을 연다. 또 준비모임인 의료생협도 곧 준비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대안적인 실험들을 본격적으로 벌일 수 있도록 뒷심이 되어준 성미산. 성미산마을 사람들에게 성미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마을의 상징이요 마을의 자존심이다. 마을의 당산과도 같은 존재다.


動産이 아닌 마을동산의 가치

어쩌면 운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인 성미산을 줄 수 있다는 게. 내가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의 옥녀봉 같은 동산이 이사 온 마을에 있다는 게 말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성미산은 절로 지켜진 게 아니니 말이다. 목숨 건 성미산 대첩을 통해 성미산을 우리들에게 주민들에게 후대에게 물려준 노력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미산 지키기는 마침표를 찍었을까. 또다시 바람 앞의 촛불, 포클레인삽날 앞의 성미산이 되어있다. 홍익학원에서 그 작은 산의 일부를 깎아 초중고를 이전해 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마포구청도 서울시청도 초중고를 이전해 주는 대가로 홍익학원 소유의 나머지 땅을 공시지가로 매입한다는 셈속이다. 성미산생태공원화에 드는 예산은 줄이고 생색만 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 해요라는 가사가 있다. 멀리 있는 명산보다 동네의 동산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맥을 같이 한다.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즐겨 찾는, 매일 오르는 동네 뒷산의 가치를 과연 얼마라고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일까.

한강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에도 마포에 하나 남은 자연산인 성미산은 주요한 노릇을 한다고 한다. 단절된 생태계를 잇는 비오톱 1등급지로 천연기념물 붉은배새매가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비오톱이란 나무, 곤충, 미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의 공동 서식장소를 말한단다. 산을 뭉갠 뒤에 옥상에 나무 심고 운동장에 잔디를 깔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내 돈 주고 샀으니 내 마음대로라는 식으로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산의 주인은 산에 살고 있는 동식물, 산을 거쳐 가는 조류, 산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 산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앞으로의 세대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성미산이 사유지로 있는 한 돈으로만 보고 계산기를 두들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개발보다 환경으로 얻게 될 경제적 가치는 뒤로 한 채 말이다. 부디 전체가 공유지로 매입되어 생태공원이 되길 바란다. 사람은 개발의 삽질로 산 하나 쉽게 파괴할 능력자이지만 파괴한 산을 다시 만들지는 못하는 무능력자이기도 하다. 더 이상 산에 구멍을 뚫고 숲을 뭉개고 강을 막고 바다를 메우며 발전을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의 선물은 내가 받았다고 내가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쓰고 물려 쓰는 것이란 건 이제 내 일곱 살 둘째 아이도 안다.

 


 ◎ 서울 성미산 가는 방법서울지하철 6호선 망원역 1번 출구에서 직진 → 우체국사거리에서 우회전 후 300미터 직진 → 성서초등학교 정문 쪽으로 성미산 올라가는 길

 ◎ 성미산 마을은 7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2009, 이곳만은 꼭 지키자!에서 산림청장상을 수상한 곳입니다.


 

※본 글은 2010년 봄에 쓰여진 글입니다. 2010년 중순에는 홍익재단의 기습벌목과 공사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 및 성미산에 대한 소식은 <긴급>성미산 기습벌목, 공사시작 , 성미산대책위원회 블로그 등을 참고하세요.



<내셔널트러스트가 추천하는 NT여행지>

-13호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사라져 가는 고귀한 자연의 가치를 살리는 것"

-17호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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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한국내셔널트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