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목소리만 믿고 움직여야 했던 함평 임야의 기증

1월초, 전남 함평 소재의 임야와 토지를 기증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기부의사를 짤막하게 밝힐 때만 해도 사실, 성사될지 의심스러웠다. 적어도 자신의 자산을 기증한다면, 만날 약속을 정하거나 아니면 방문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증대상인 임야와 토지가 가족 공동소유라 했다. 가족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상속자산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고, 누구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기증은 불가능하게 된다. 최대한 성의를 다해 기증의 절차를 설명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어렵겠다’ 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전화를 걸어 온 이 남성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어쩌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거나 다소 치기에 휩싸인 상태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이 남성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기증에 대해 가족들 모두의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하면 영구보전이 가능한 지 재차 물어왔다. 현재 보전상태를 확인한 후, 결정할 수 있다고 전과 동일한 답변을 드렸다. 그러자 그는 확인해 줄 수 있냐고 했다. 조용한 말투였지만 서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화상으로 통성명만 했을 뿐,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의 말만 믿고 함평까지 내려가는 길은 불안과 공허감이 꼬리를 물었다. 게다가 혼자만의 답사가 아닌, 운영위원장님을 비롯해 숲 전문가들까지 대동하는 터라 부담이 더했다. 약속이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사리분별도 못하는 실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8시간이 넘도록 바쁜 분들을 고속도로에 묶어 놓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를 걸다

비록 전화상의 약속이었으나, 대상지역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임야의 면적은 67,835(20,550)로 필지의 최정상부는 해발 310m의 높이에 위치해 있다. 멀리 함평 앞바다의 풍경이 내려다보이고 선산으로 이용했다는 말처럼 볕이 좋은 남향이었다. 임야의 일부가 선산으로 이용된 흔적도 보이지만 묘는 모두 이장된 상태였다. 임야의 식생은 주로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 외 사스레나무, 송악, 비목, 감태나무, 춘란 등 난대 식물들도 넓게 분포했다

이병천(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회장님은 과거 편백나무로 수종갱신을 시도했다가 화강암 지반 탓에 실패한 지역이라고 설명하셨다회장님의 말대로임야 곳곳에 유려한 모양의 화강암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숲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일반적인 산지의 나무와 달리화강암반에 뿌리내린 소나무들은 몸통과 줄기가 휘어지고 얽혀 수형이 아름다웠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현재의 숲 보전상태가 좋다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당장 이용이 불가능하더라도 미래의 활용가치를 염두에 두자고 입을 모았다지리적으로도 영광과 무안사이에 위치하면서 서해안을 끼고 있어 생태적 주제가 풍부한 곳이라는 장점도 언급됐다향후 내셔널트러스트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이 임야를 남부지역 현장 교육장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그리고 함께 기증을 약속한 농지(총 2,427/약 735)와 연계한 생태탐방과 숲체험힐링프로그램 등 다양한 시민교육의 장으로 활용가능성도 타진하였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기증절차를 묵묵히 감수해 주었던 가족들

2월 개최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회에서 함평 임야와 농지의 수탁이 최종 승인됐다. 좋은 취지의 기증이지만 이전등기를 위해서는 복잡한 증여절차를 거쳐야 했다. 법무사가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해 주는 며칠사이, 또 연락이 왔다. 얼굴도 모르는 이 남성은 평소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가능한 3월 초 안에 모든 증여절차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그리 급한 걸까? 담당 법무사를 채근해 서류준비를 준비하면서, 등기이전은 실제소유주를 모두 만나 증여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참 복잡한 절차가 아닐 수 없었다. 함평의 임야와 토지는 78세인 어머니와 40대의 세 자녀의 공동소유다. 함께 거주하는 것조차 불투명한 이들을, 한날한시 한곳에 모여 달라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기증하겠다고 밝힌 남성은 여러 가지 복잡한 서류와 가족들의 면담에 불편한 내색조차 드러내지 않았다전화상의 늘 평온한 목소리 그대로 어려운 부탁을 받아들였다.


믿으니까요(Trust), 믿으니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기증의사를 밝힌 얼굴도 모르는 남성과 그 가족들을 만나는 날. 소유권 이전등기를 위해 법무사님을 대동한 자리에 맏형을 제외한 가족 세분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가족이나 서로 비슷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갖기 마련인데, 모두 순하고 반듯한 인상이었다. 특히 어머님은 80을 앞둔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상의 목소리만 들었던 이모씨(44)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형제들 중 막내였다.

법무사님이 함평 임야와 토지의 이전에 대한 동의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서류에 날인이 이루어졌다. 가족들은 도장을 내주며 조용히 날인된 서류를 돌려보았다. 서류의 날인이 끝나고 소유권 이전 절차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그리고 비로소 기증한 자산을 단체가 영원히 보전하겠다는 협약서의 내용을 설명하고 가족 모두의 날인이 이뤄졌다.

날인이 끝난 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셨으니 이번 기증에 대해서 가족들의 이름과 얼굴이라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드렸다그러자 가족 모두 수줍은 듯 웃었고이씨의 누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사실상 이번 기증에 대해 사진 한 장 이름 석 자도 남기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태도였다짧은 순간, 가족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공통된 이해와 서로간의 신뢰를 느낄수 있었다그 견고한 유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여겨졌다

막내 이씨가 나직하게 말했다가족들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길 원치 않으며그 외 드러난 사실관계만을 알려주길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이씨의 누나는 오히려, 이런 기회를 제공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어머니는 자녀들의 고조부부터 잠들었던 곳이라 100년 가까이 집안 대대로 상속되었던가족들에게 의미있는 장소라고 말씀하셨다현재 묘는 모두 이장됐으나, 이곳의 처분이 자손으로서 도리가 아님에 가족 모두 공감했다 덧붙이셨다그리고 기증한 것이 오히려 흡족하며처음 마음 그대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영원히 보전해 주길 당부하셨다막내 이씨는 그 자리에 없던 맏형의 이야기도 전했다맏형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전달받은 기증협약서를 읽어본 후기증을 결정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주신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렸을 때막내 이씨의 말이 각자(刻字)처럼 마음속에 한 글자씩 새겨진다.

믿으니까요(Trust), 믿으니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가족간 유산을 둘러싼 분쟁은 우리현실에서 흔한 일이다그럼에도 이씨 가족들이 살아온 삶 속에서 어떤 계기 혹은 가치가 서로간의 견고한 결속을 이루었는지 궁금했다하지만 현재 이들 사이에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교감이, 어쩌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살아 온 기억의 축척일 수도 혹은 종교적 신념일 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 묻거나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이 가족에 대한 예의라는 확신이 들었다다만 이씨의 누나가 막내를 가리키며 우리 동생도 과거사회를 위해 특별한 봉사활동을 했었다고 말해 궁금증을 유발했는데이씨가 수줍게 웃으며 손사래로 누나의 말을 제지했다.

함평 임야와 토지를 기증한 가족들과의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만남은가족들 사이에 흐르는 화목함 이상의 신뢰를 느끼며 아쉽게 끝을 맺었다. 

 

에필로그

그날 밤, 막내 이씨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국장님, 가 곧 외국으로 나가서 국내에 거의 못 들어오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혹시 연락하실 일이 있으면 제 누님께 연락을 취해 주세요.’ 국내에 거의 못 들어오게 될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며, 그가 왜 기증을 서둘렀는지 짐작이 갔다.

그에게 답문자를 보냈다. ‘국내에 거의 못 들어오신다니 아쉽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 인연같이 느껴지는데, 이리 기약없이 헤어지게 돼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네요. 어디서든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마지막 문자가 왔다. ‘저를 낳아주신 조상님들께서 쉬셨던 곳이 좋은 단체와 인연을 맺을 수 있어 감사하고 마음이 참 좋습니다. (중략) 저도 내셔널트러스트에 대한 관심의 끈 놓지 않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항상 세상의 빛이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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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세계내셔널트러스트대회 참가기
Common Threads; Different Patterns

 


공동집필: 조명래, 박도훈

매 2년 마다 열리는 세계내셔널트러스트대회가 영국내셔널트러스트 주최로 16회를 맞이하여 영국 캠브리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영국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2인의 초청을 받고 배청 이사님의 후원으로 조명래 공동대표와 박도훈 부장이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문승현 팀장이 동행하여 한국에서는 모두 3인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9월7~11일에 진행된 이번 16회 세계대회 주제는 '공통의 실타래, 다른 무늬(Common Threads; Different Pattern)'였습니다. 직역하자면 그렇지만 뜻은 새겨봄직 합니다. 'Common Threads'는 '공통적 맥락'을 뜻하는 용어로 세계 각국의 내셔널트러스트가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뜻하며 'Different Pattern'은 지역별로 다른 문화와 제도에서 나타난 '무늬' 즉 지역 특성을 가진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말합니다. ‘21세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역할과 목적’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번 대회는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유산을 잠식하는 개발압력과 전 지구적 위협을 극복할 대안과 전략을 공유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번 대회는 호주,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포루투갈, 버뮤다, 인도네시아, 슬로베니아, 체코, 한국, 중국, 일본, 인도, 우간다, 짐바브웨 등 50여 개 국 70여 단체, 200여명의 참가자가 등록하였으며 숙소는 캠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전체회의는 캠브리지대 웨스트로드 콘서트홀에서 열렸고 개별 활동 프로그램들은 캠브리지 근처에 위치한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영국NT대표 찰스 황태자의 영상 환영사

INTO 집행위원 및 임원진: 위원소개 링크


첫날(9월7일) 총회가 있었습니다. INTO(세계내셔널트러스트기구)의 경과보고와 정관에 따른 새로운 임원 선출이 있었습니다. 회장으로는 영국내셔널트러스트 전임 사무총장(2001-2012), 피오나 레이놀즈경(Dame Fiona Reynolds) (Dame:여성께 부여하는 Sir), 부회장으로 우간다의 에밀리 드레이니가 선출되었습니다. 사무총장으로는 캐서린 레오나드(1999년 영국 NT방문 때 첫 대면이 있어, 한국NT를 잘 기억함), 그리고 한국NT 조명래 대표를 포함한 12명의 집행위원이 선출되었습니다.
신임 피오나경은 취임사에서 “INTO회장이 된 것을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국NT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운 좋게도 다섯 번이나 ICNT(세계대회)를 참여했습니다. 재직 중에 INTO가 설립되고 글로벌 네트워크로 발돋움하는 용감한 도전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 관계를 더욱 새롭게 하고 협력해가는 기회를 즐기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전 총회 이후, 개회기념 주제발표(NT운동의 전망과 도전) 및 강연이 오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영국내셔널트러스 대표(president)인 찰스 황태자의 영상 인사도 있었습니다. 저녁엔 킹스칼리지의 강당에서 축하 파티가 있었습니다.
 

캠브리지 킹스칼리지 강당은 영화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둘째 날(8일),  캠브리지 근방(동/북쪽) NT 사이트인 Anglesy Abbey(문화유산), Wicken Fen(영국 NT 최초 획득한 자연유산)을 방문한 후 현지에서 ‘문화정체성 지키기’라는 주제에 대한 토론이 있습니다. 글로벌화 되어가는 문화동화현상에 지역의 유형 혹은 무형의 인류문화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각 나라의 사례와 대안을 제시하는 토론이었습니다. 저녁엔 신임회장 주재로, '향후 INTO 활동방향/과제에 관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앵글 수도원

위켄팬 습지(영국최초의 자연유산)

영국내셔널트러스트 가게(각 사이트와 지역 명물, 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Ickworth 장원

영국NT사이트 답사해설은 대부분 은퇴 시니어인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주제별 그룹토론이 텐트별로 진행되었습니다. 관심있는 주제를 선택해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다루고 싶은 주제가 몇개? 전부 다 필요해 ...ㅠㅠ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
  -브랜드 전달과 연관
  -펀드레이징 기법
  -자원봉사 활용하기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기
  -법제와 거버넌스
  -캠페이너와 비평가와 같은 우리의 역할

셋째 날(9일), 캠브리지 근방 '뷰리 세인트 에드문즈(Bury St. Edmunds)의 NT 사이트(Theatre Royal, 18세기 최초 극장)에서 'Best Practices' 발표가 있었고, 장소를 다른 사이트인 Ickworth 장원으로 옮겼습니다. 저택과 정원 등을 답사하고, NT활동 관련된 주제(펀드레이징, 거버넌스, 소통 등) 그룹토론회가 정원의 텐트 속에서 오후 동안 열렸습니다. 이후 저녁 식사 전에 지역 미팅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지역모임에서는 한국, 타이완,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참가했으며, 향후 아시아권 사이의 활동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아시아 내셔널트러스트 회의를 개최한 후(2008), 후속 모임이 없음을 지적했고, 다른 나라가 이어서 개최할 것을 제안, 인도네시아에서 내년 1월에 아시아권 문화유산 커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아시아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세션을 포함시켜 진행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아시아퍼시픽 지역모임 토론

넷째 날(10일), 캠브리지 근방(서쪽)의 대장원 Wimpole(NT 직원 42명, 자원봉사요원 500명)에서 NT가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농업활동에 대한 설명과 현장 토론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땅과 경관과 자연'. 주로 이 사이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물살리기 캠페인'에 대한 토론과 농약과 화학비료로 침식되어가는 토질의 개선 등 농업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장원의 헛간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습니다. 영국식 포크댄스를 배웠는데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Wimpole Hall

동영상으로 보실까요? 올드한게 놀기 딱 좋았습니다.


 다섯째 날(11일),  다시 캠브리지대 콘서트홀에서 전체 마무리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체 회의 전에 신임회장 중심으로 집행위원회가 열렸습니다.(우리가 일찍 떠나야 한다하여 오후 일정이 오전 일정으로 옮겨졌음) 12명의 집행위원들이 모두 참가한 첫 집행위원회에서는 집행위원회 운영에 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집행위원회에서 매 2개월마다 온라인 회의를 개최하며 일년에 한번씩 대면(face-to-face) 회의를 갖도록 합의하고 첫 회의는 11월6일에 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전체 회의가 시작되면서 특강이 있었고, 대회활동에 대한 간단한 평가가 있었으며, 신임회장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신임회장은 '가족', '성공', '목소리' 3가지 키워드로 INTO를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끝으로 차기 회의개최국인 인도네시아 대표들의 수락인사, 문화공연 등이 있는 후, 대회가 공식 종결되었습니다.
 

차기 ICNT 개최국 인도네시아에서 축하공연을 마련했습니다.


이상이 간단한 16차 내셔널트러스트 세계 대회의 주요 내용입니다.
인상 깊은 것은 이번에 ‘루안 헤리티지재단’이 중국의 첫 INTO의 공식 멤버로 참여하였다는 것과 신생 동유럽의 ''체코 내셔널트러스''는 활동본부가 영국에 있으면서 글로벌 모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적 구호활동 등도 지금은 국경이 따로 없는 시대이지만 자국의 유산보전을 위한 모금활동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고정관념을 버려야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대회는 영국내셔널트러스트 중심으로 모든 게 다루어지다 보니, 우리 같은 신생단체들이 주체적으로 참가해 함께 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흐름과 동향, 다른 나라의 활동 등에 대한 직간접 체험은 우리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다시 한 번 성찰하면서 한 걸음 더 나가게 하는 데는 적잖은 도움이 된 듯 합니다. 특히 향후 NT활동은 문화유산 확보와 보전에 더 역점을 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 또한 국내 관련 단체들과의 협력도 더 강화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세계대회를 우리가 개최할 가능성도 꿈꾸어 봤습니다.

INTO 2015 세계대회 포스팅 : http://www.internationaltrusts.org/2015-conference-in-england 

INTO 총회 소식: http://www.internationaltrusts.org/14375

INTO 집행위원소개: http://www.internationaltrusts.org/about-into/executive-committ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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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내고 땅땅거리면서 사는 나무 황목근 석송령 이야기



세금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벌부터 부동산 투기꾼은 물론 대부분의 샐러리맨들까지 아무도 세금은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이름으로 등기된 땅을 가지고 당당히 세금내고 살아가는 고목나무가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자라는 천연기념물 294호 석송령과 같은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400호 황목근이 그 주인공이다. 자기 앞으로 등기된 땅을 가지고 있는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둘 밖에 없다. 재산이 있으니 세금을 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황목근부터 먼저 내력을 알아본다. 김천과 영주를 잇는 경북선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용궁이란 자그마한 시골 역을 만난다. 용궁은 바로 토끼전에 등장하는 그 용궁(龍宮)이다. 생선을 좋아하는 필자는 자라의 꾐에 빠진 토끼 신세가 될까봐 용궁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바짝 긴장한다. 나무는 철길 건너 경지정리가 잘 된 들 한 가운데의 금원마을 앞에 널찍한 터를 잡고 자란다. 나이는 약 5백년, 높이는 18미터, 줄기의 둘레는 네 아름에 둥그스름하게 잘 발달된 버섯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는 내륙지방에 흔치 않는 팽나무다. 그러나 이 나무는 팽나무란 이름보다 황목근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금원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풍년제를 지내기 위하여 쌀을 모아 공동의 재산을 마련하였다. 근대화가 되자 이제 공동재산을 등기부에 올려야만 하였다. 뒷날 혹시라도 재산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논란 끝에 1939년 마을 앞 당산목 팽나무 앞으로 등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팽나무라는 보통명사로는 등기가 되지 않으니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팽나무가 5월에 황색 꽃을 피운다는 뜻에서 황이란 성을 따오고, 나무의 근본이란 뜻으로 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여 황목근(黃木根)이라 했다. 황목근은 현재 약 2,800평의 자기 땅을 가지고 있는 알짜 땅 부자다. 토지관리 대장에 엄연한 고유번호도 가지고 있고 매년 세금도 꼬박 꼬박 낸다. 2만원에 가까운 종합토지세를 내고 있으며, 틀림없이 자진납부하는 모범 납세목(納稅木)이라고 한다. 땅을 빌려 주고 받은 소작료는 한 푼도 쓰지 않는다. 나무의 모든 몸 관리를 국가에서 해주는 탓이다. 땅 투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자고나면 재산이 불어나는 행복한 나무다.



 

이어서 석송령의 사연을 들어본다. 약 6백 년 전 마을 앞 석관천에서 장마 비로 떠내려 오는 어린 소나무 한 그루를 건져 마을 앞에 심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나무는 이제 높이 10여m, 둘레 두 아름이 넘는 큰 나무로 자랐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들어설 즈음, 마을에 홀아비로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은 전재산을 소나무에 물려주겠다고 유언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유언이지만 그대로 들어주기로 한다. 석평 마을의 석(石)자를 성으로 하고‘신령스런 소나무’를 뜻하는 석송령(石松靈)이란 근사한 이름으로 등기를 했다. 지금의 석송령은 큰 길과 인접한 넓은 터를 갖고 마을 회관까지 들어서 있는 부자나무가 되었다. 지방세를 비롯한 재산세와 방위세까지 사람이 내는 세금은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내고 있다.

예천군에는 이렇게 자기 앞으로 등기된 땅을 가진 희한한 나무를 두 그루나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흥미로워한다.




본 글은 경북대학교 박상진 교수님이 쓰실 글로, 매거진<내셔널트러스트> 21호 자연이야기에 수록된 글입니다.


- 글: 박상진ㅣ 경북대학교 교수

- 이 글은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 21호를 통해 소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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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숨길’ - 전주천 수변생태공원

고요하게 또 깊고도 깊은 푸른 물결 위에 전주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흐르는 곳, 전주천. 오목대, 한벽당, 남천교, 싸전다리, 매곡교, 다가산을 굽이굽이 감아 돌아 김제평야를 가로지르는 만경강에 이르는 전주천은 천년 전주가 빚어 온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말없이 지켜본 증인이자, 전주의 혈맥으로 전주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전주의 대표 하천이다.

 

전주천 물 속은 들여다보면 가슴이 시렸다.
더욱이나 이 각시바우 치마폭 아래 이른 물살은
깎아지른 절벽에 긴 몸을 부리면서
군청같이 선명한 남빛으로 짙어진다.
웬일로 물살은 그곳에 이르면
더는 흘러가지 않을 것 마냥 고요하게 깊어져,
햇빛을 받으면 은비늘 같은 파랑이
거울처럼 부서져 눈이 시었다.


< 소설가 최명희, 미완성 소설『제망매가』중 >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를 거친 도심하천의 운명이 다들 그러했듯 10여년 전만해도 전주천의 생태계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코를 싸매지 않고서는 도저히 거닐 수 없을 정도였다.

2000년, 늦게나마 하천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천 주변을 흉물스럽게 덮고 있던 콘크리트 호안과 주차장을 걷어냈고 수변에는 꽃창포와 갯버들을 심기 시작했다. 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어도를 만들었고 하천 사이사이에 놓인 우직한 돌다리는 사람들의 발길도 다시금 전주천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전주시의 꾸준한 하천 관리는 3~5급수에 머물던 수질을 1~2급수로 바꿔놨고 쉬리, 납자루, 동사리, 각시붕어 등 1급수 어종들도 전주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전주시는 전주천 주변 토지 소유자들의 동의를 얻어 10,100㎡의 부지를 확보하고 이곳에 창포, 쑥부쟁이, 부들, 물억새 등 8종 120,500본의 수생식물을 식재하고 체험탐방로를 만드는 등 수변생태 공원으로 변화시켰다. 수변에는 어류와 양서류의 은신처인 늪도 만들어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8년 전주천과 수변생태공원을 중심으로 천연기념물 제330호이자 1급 멸종위기 동물인 수달의 서식이 확인되었다.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새와 1급수에만 서식한다는 쉬리도 전주천에 살고 있다. 그 뿐인가. 백로와 해오라기가 날아들고 뜸부기, 꼬리명주나비, 딱정벌레, 하늘소, 물방개가 어울려 산다.

새로워진 전주천과 수변생태공원은 아이들에게 말로써 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아이들은 오목대와 향교, 한벽루를 따라 거닐며 전주사람들의 기개와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수변생태공원을 둘러보며 환경의 소중함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스스로 체득하게 된다.

전주시는 승암마을 자연생태박물관 앞과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천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는 둘레길을 ‘숨길’로 명명하고 시민들을 위해 정비에 나서고 있다. 걸어가면서 역사와 생태문화를 사색할 수 있도록 탐방로 곳곳에 스토리가 있는 학습표지판을 설치하고 가족들이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안전한 산책로 조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주시민들은 이제 전주천에 다시 그들의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한벽루 아래로 흐르는 시원한 바람길, 물길 위로 전주천을 끼고 사는 전주시민들의 얘기가 다시 흐르고 있다.

 

오시는길 │ 전주자연생태박물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951-1 / 063-281-2832 

글: 노한형 | 전주시 자연생태박물관 담당 (본 글은 매거진 <내셔널트러스트> 17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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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하듯이 항상 부족함과 아쉬움으로 계절을 보낸다. 집 짓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로서는 그 아쉬움 속에서도 그해 작업한 공간 중에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마음에 남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 일 우 재 >

하루가 넉넉하고 햇살이 넉넉하라고“날 일 日”에

“넉넉할 우 優”를 써서 일우재라 이름을 붙였다. 


건축물은 시대성과 문화사고가 반영되고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의 생활이 변하듯이 사람과 함께 변해야 한다고 한다.

과연 우리 건축물인 한옥은 우리 삶이 변하는 것에 얼마만큼 변화하였는가? 과거의 집인 한옥이 현재에도 유효하고 미래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가? 미학적으로 나의 한옥 작업이 갖는 건축적 예술의 베이스는 무엇인가? 짧은 기간에 작업을 해오면서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두서없는 생각들이었다. 이런 생각들 속에서 일우재 작업을 시작하면서 우선 든 생각은 보수에 있어 원형의 존중에 기초를 둔 형태의 보존을 하자는 것이었다. 채우기보다 비우기로 형태를 다듬는 것이란 생각의 정리로부터 일우재 작업은 시작되었다.


일우재의 마당 

일우재는 일고주 오량에 평주, 민도리, 맞배 형태의 지붕으로 일제 강점기에 작업한 북촌 한옥 전형의 가옥이다. 공사하는 동안 이웃의 민원과 지나친 관심 덕에 이웃 간에 작은 소리가 나기도 하였지만, 집 주변이 조용하고 도심에서 쉽지 않은 소리의 여백을 느낄 수 있어 햇빛과 그림자 그리고 침묵이 있는 집이기를 기대하였다.

누구나 작은 것을 보면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듯 일우재 역시 공사 전의 작고 허름한 모습을 보면서 작은 공간에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통해 공간의 구속과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또한 아차산 일출이 보일 정도로 차경이 좋아 밖에서 보는 집과 다르게 안에서 보는 세상이 넓어 그곳에 있는 사람은 결코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호연지기가 있는 공간이기에 더욱 마음이 갔다.

일우재의 대문


일우재의 작은 물리적 공간이라는 것에서 작아도 자연으로 이끌어주는 편안한 공간이면서 더불어 질서와 기품이 있는 공간이기를 꿈꾸며 공사를 시작했다. 

우선 공사 전 마당에 있는 비한옥부의 건축물과 화장실을 철거하고 마당에 작은 정원을 꾸며 실내공간의 부족함을대신하는조망과마당을더욱넓혀마당은집을 사용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기고 개방감을 주었다.

또한, 집은 사람이 살지 못하면 집으로서의 생명은 없기 때문에 사람이 생활하는 집의 역할로서 공간 활용을 위해 방마다 벽장과 대청마루 밑 창고, 주방 위 다락을 복원하여 수납공간과 한옥이 가지고 있는 동심과 향수를 충족시키기로 하였다. 또, 너무 낡아 사용하기조차 어려운 후면에 있는 장독대 및 슬레이트로 마감된 공간을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옷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으로 하였다. 

부엌 옆방에서 마당 안쪽으로 나와 있던 비한옥부를 철거하면서 누마루 형태의 마루를 두어 안과 밖의 경계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둔 것 역시 실내공간의 버림으로 그 집이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하늘과 발아래 한옥들의 겸손한 지붕모습을 얻을 수 있었다.

일우재는 그 규모에 있어 우리 서민의 가옥이다. 또 도시형 한옥으로서 수평적 확장이 불가능한 형태의 가옥의 표본에 속하는 한옥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즈음 한옥이 다시 우리 삶에서 자기 몫을 하기 시작할 때 또 많은 이들이 우리 건축물에 살고 싶다는 생각들이 일고 있을 때이기에 더욱 이작은 공간인 일우재가 현재에도 유효한 건축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여 마음에 남는다.


대청 모습

일우재 뿐만 아니고 한옥 작업할 때마다 우리건축 한옥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든다. 고건축이란 과거의 역사적 실례가 아닌 그 속에서 현대에도 유효한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전통이어야 한다. 변화를 주고 변화를 주지 말아야 하는 기준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 건축물이 진정 사람의 배려가 있는 공간이라면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같이 변화해주는 공간이어야 마땅하다. 그러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 건축물을 두고 인제 와서 다시 왔다는 둥, 돌아왔다는 둥 민망할 만큼 소란스럽지 않는가.

우리 건축물은 어디 갔다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버리고 우리가 내버려두고 옆에 두지 않고 함께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기에 그전 그 이전의 모습으로 그냥 그곳에서 서 있었던 것뿐이다.

이제 그곳으로 우리가 들어가 다시 생활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은 변화를 주어 우리 건축물과 함께 살아 갈 때이다.

한옥 이제 우리 건축물 한옥에 우리가 들어가자. 치유와 재생을 통하여 우리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다음 세대를 배려한 지속가능한 치유와 재생으로.


글: 김장권 북촌HRC 대표 (본 글은 매거진 <내셔널트러스트> 13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관련글: 한옥의 아름다움   (글: 송인호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서울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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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강화 매화마름 에코 볼런투어

"행복한 여행, 나를 위한 봉사였어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유산으로 확보하여 보전하고 있는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국내 유일의 람사르(RAMSAR) 논습지에 200명의 자원봉사대가 방문했습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사회적기업 트래블러스맵,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함께 마련한 에코볼런투어...

생태-봉사-여행을 모두 맛보는 절호의 기회!

대학생, 시니어, 전문봉사자(의료, 전기, 보일러, 이미용)로 구성되어 자기돈 내고 참여하는 봉사대.

전날 밤까지 태풍 '카눈'이 상륙하여 돌풍과 폭우로 사람들을 못내 불안하게 하더니, 그 예사롭지 않은 출발에도

봉사대는 결의에 찬 모습으로 강화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태풍은 조금 전 물러가고 마을 사람들의 따듯한 환영이 봉사대를 반깁니다.

전문봉사대는 초지리 마을회관으로,

생태체험 피사리 봉사대는 초지리 람사르논습지로,

당산리에는  약수터 정화활동과 고려고종사적비 정비, 잼만들기로 첫 봉사활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이장님의 관내 방송으로 속속 마을회관으로 모이신 어르신들...

90세 최고령 어르신의 커트를 시작으로

 최선을 다해 패션을 완성시킵니다.

 침과 뜸으로 불편한 곳을 시원하게 풀어드리고요.

 스포츠 마사지로 육신 뿐 아니라 정신도 쉬게 해주십니다.

30분 넘게 마사지 받으신 할머님은 "생전 이렇게 나를 다정하게 만져준 사람은 없었다" 면서 괜한 눈물을 ㅠㅠ

내셔널트러스트 시민유산, 매화마름 논에서는 생태교실을 열었고요.

우리의 봉사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논습지의 생물다양성은 우리에게 건강한 밥상, 건강한 인간, 생태의 조화와 풍요를 안겨주는 소중한 것입니다.

 생물다양성을 직접 모니터링하는 시간을 갖고

얼마나 이곳이 청정한 생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물고기도 잡아보고

 각자 잡아온 논습지 친구들을 서로 확인했습니다.

 이곳 논에는 새섬매자기가 많습니다. 새섬매자기의 알뿌리는 겨울철새들의 먹이가 된다고 합니다.

논에는 잡초로 취급받고 있지만 한강하구에서는 개체수가 모자라 우리가 채취한 새섬매자기를 장항습지에 이식할 계획입니다.

이것이 생태자원 재활용이라 해야하나요? ^^

두둑하게 수확해 모아두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화문석체험을 했습니다.

 강화도에서 나는 왕골은 순백색 우수한 품질 덕에 고려시대는 송나라와 원나라에,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와 일본에 보내는 수출품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화문석은 여름에는 습기를 막아주어 시원하게, 겨울에는 냉기를 막아주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인데요, 잘 말린 왕골에 각양각색의 물을 들여 틀에 올리고 왕골 겉감과 속감을 한데 모아서 고드렛돌을 돌려 가며 짜냅니다. 화문석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6만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송해면 열두가락 농악대는 흥겨운 농악으로 봉사자들의 사기를 업 시켜주시고

한편, 보일러 봉사를 맡은 전국보일러설비시공협회 마포서대문지부 봉사단은

마을 가가호호 보일러와 전기 보수를 책임집니다. 미리 전기와 보일러 수리 신청을 받아

방문한 집들은 예상보다 훨씬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불도 들어오지 않는 덥고 컴컴한 보일러실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며 보일러 수리에 열중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

봉사라는 것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일하는 것이구나 하는 진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오후에는 혼자 사시는 독거 노인 댁을 찾아 전기와 보일러를 점검해 드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 방문한 할머니 댁에서는 손이 닿지 않아 벌써 몇 달째 깜박이는 형광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전기, 보일러 전문봉사자분들은 보일러와 전기시설을 점검하고 깜박이는 형광등뿐 아니라

집안의 모든 등을 새 것으로 교체해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형광등 100개보다 빛나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네요^^

 마을 어르신들에게 드릴 상큼한 레몬차를 만들기도 하고

 초지리 피사리 작업중에 들이닥친 새참. 마을 어르신들이 손수 쪄서 보내주신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서울자원봉사센터장님이 들고 오신 쮸쮸바도 더위와 갈증을 싹 가시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저녁시간에 펼쳐진 "별빛콘서트"

서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하룻 사이에 친해진 봉사단들이 각조마다 준비한 춤과 노래,

당산리 어르신들과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한여름 밤의 마을 잔치가 벌어집니다.^^
우리 진정 볼런티어에서 처음 본 사이가 맞나요?

조별로 준비한 장기자랑에 마을 어르신들도 박장대소 즐겁게 함께 놀았습니다.

매화마름쌀로 만든 수제 막걸리, 맛은 구수한데 희석이 안되어 알콜이 독함을 모르고 들이켰다가는 바로 앉은뱅이가 되어 버립니다. '일명 앉은뱅이술..'

마지막날 거의 날을 새다시피 놀고도 강화갯벌 트래킹코스를 무사히 마치고, 갯벌센터에서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멸종위기식물을 아끼고 깨끗한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강화도 어르신들에게 작은 봉사의 손길을 함께 한 것이 큰 의미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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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로 후원자이신 윤신원 회원님으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왔습니다. 윤신원 회원님은 서울성남고등학교의 선생님이신데, 교내에 '내셔널트러스트 동아리'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어요. 단체 내에 청소년 기자단이 있지만, 고교 동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이번 성남고가 처음이랍니다.

동아리를 구성하는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일지,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동아리에 들게 되었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7월 어느날, 사무처에 놀러왔답니다. 저희가 이 동아리에 갖는 관심 만큼 이 친구들도 시민단체의 활동가와 활동에 대해 여러 궁금증을 안고 한 학기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사무처에 찾아온 것이지요.



왜 내셔널트러스트 동아리에 들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고교생이 할 만한 폼나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름이 간지(?)나서, 라고 답한 친구들이 몇 있는 걸 보니 역시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고교 남학생들입니다. 

물론, 진중한 대답도 있었어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고 활동에 조금이나마 동참해보고 싶은 친구들,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가입한 친구들이 각자 한 학기 동안의 소감을 풀어 놓았습니다.

한 학기 동안 이 친구들은 환경에 대해 토론도 하고, 외부 봉사활동(BIG ISSUE 잡지 팔기 등)을 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도 키웠다고 해요. 환경과 타인에 대해 인식이 전환되는 자극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도 밝히는 친구들을 보니 내셔널트러스트 활동가로서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물론 친구들의 고민도 많았습니다.

앞으로 내셔널트러스트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할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등학생으로서 도움이 될만한 일이 무엇일지 차차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 과제라고 합니다.

이는 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와 자주 왕래하면서 하나씩 채워나가보기로 했답니다.

어쩌면 이번 가을 성남고의 축제에는 내셔널트러스트 홍보부스가 들어설 지도 모르겠네요. 동아리 친구들이 홍보 부스를 제안해서 저희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기로 했어요.

친구들이 아름아름 용돈을 모아 후원도 시작하기로 했답니다. 작은 돈이라도 내가 쓸 돈을 아껴 남을 위해 후원하는 지금의 첫 걸음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베품의 그릇이 더 커져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원으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첫 걸음을 시작한 성남고 내셔널트러스트 동아리에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의 힘찬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성남고 내셔널트러스트 동아리가 NT에 보내는 편지>

안녕하십니까. 성남고등학교 내셔널트러스트 동아리입니다.

우선 저희학교가 정식으로 동아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에 많이 놀랐는데 직접 방문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부회장으로써 왠지 뿌듯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저희 동아리가 처음 설립이 되어 많은 고민에 있는데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도 이같은 어려움이 있어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어 덕분에 많은 활동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저희 동아리가 많이 부족한 것도 많고 딱히 크게 생각한 활동도 없어서 고민인데 도움을 부탁하면 들어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희 동아리 잘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NT홍보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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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일본에 발생한 규모 9.0의 일본 대지진은 쓰나미와 원전 폭발 등으로 대재앙을 가져왔다. 공식 사망·실종자 수만 2만8천명이 넘는다. 이날 나는 도쿄를 방문했다가 시내 한복판에서 지진을 맞았다. 10여 년 전 도쿄에 1년간 산 적이 있기에
웬만한 지진은 그리 염려하지 않았지만 이날 도쿄에서 몸으로 느낀 지진은 순간 죽음의 공포로 다가올 정도였다. 그 뒤 이어진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참사는 체르노빌의 악몽을 되살려냈다. 더욱 큰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사고 등급 가운데
옛 소련의 체르노빌원전과 동급인 7등급으로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원전 사고는 분명 인재이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가 빚어낸 인재이다.

게다가 이같은 대재해 발생 이후 대응도 문제 투성이였다. 일본은 원전에 대한 정보를 국내외에 숨기기에 급급했다. 우리나라도 원전의 방사성 물질 확산 피해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환경재단의 최근 웹레터에 따르면 세계의 원전은 평균 가동연수가 25년인데 비해 폐쇄에는 12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1997년에 30년 수명을 끝낸 일본 도카이 원전의 해체기간은 23년, 비용은 1조2338억원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리 1호기의 경우 철거해체 비용이 약 6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노후 원전 일곱기의 가동을 잠정 중단한 것은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프라이부르크 Metro Centric

 

이러한데서 ‘탈원전의 길’을 걸어온 독일 프라이부르크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독일 남부지역의 인구 20여만 명의 도시인 프라이부르크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전반대운동에서 비롯됐다. 지금부터 약 40년 전인 1970년대 초 제1차 오일쇼크 이후 프라이부르크 인근 비일지역에 독일의 20번째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이 추진되면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계기가 된 것이다. 숲과 포도밭 등 자연경관이 좋았던 이 지역에 원전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연일 반대 집회나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이 도시가 오늘날 ‘환경수도’ 또는 ‘태양의 도시’가 된 것은 여느 도시와 달리 반핵 구호를 넘어서 생활에서 ‘에너지 절약운동’을 철저히 연구, 실천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해왔기에 가능했다. 즉 원전 건설반대와 더불어 에너지낭비와 쓰레기 투기, 자동차에 의존하는 대량 소비생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시와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에너지절약 환경실천의 생활화에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반영돼 1972년 프라이부르크시 교통국은 ‘제1차 자전거교통망 플랜’을 수립해 자전거도로를 설치했고, 시 전철을 유지 확대키로 결정했다. 1973년에는 옛 시 중심가에 승용차 진입 규제가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졌고, 1979년에는 ‘제2차 종합교통시스템’이 마련돼 환경친화적인 교통정책이 시행되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프라이부르크시 의회는 만장일치로‘비일(Wyhl)지역 원전 건립 반대’를 결정해‘탈원전’을 선언했다. 이와 동시에 당시 롤프 뵈메 시장은 태양광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절감정책, 교통정책, 쓰레기대책 등 환경문제 전반에 대해 종합대책을 수립해 시민과 함께 ‘솔라시티’만들기를 적극 추진했다. 이미 20여년 전에 원전을 넘어 재생가능에너지로 발빠르게 전환했던 것이다. 이러한 프라이부르크시민과 시의 노력으로 프라이부르크시에는 오늘날 ICLEI(국제환경지자체협의회) 유럽사무국, 프라운호프연구소 등 현재 60여개의 국내외 환경관련 단체 및 연구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자전거와 중앙역

 

‘태양의 도시’프라이부르크시의 에너지 자립 정책 가운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이다. 지난 1995년에는 드라이잠축구경기장 남쪽 스탠드 지붕에‘시민참여형’으로 대형 태양전지패널을 설치했다. 3년 뒤에는 프라이부르크시에 솔라주식회사(SAG)가 설립됐고, 교외 뮌찡겐 지역에는 태양광을 이용한 분양주택단지인 ‘솔라가든’이 즐비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프라이부르크는 종래 60%였던 원전의존율을 30% 수준으로 낮췄고, 도시 전력의 50%를 열병합발전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2008년 현재 태양광 및 환경 에너지산업에만 1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놀라운 점은 1972년 선진국의 대부분이 고속도로 건설에 익숙해져 있던 시기에 프라이부르크는 자동차억제정책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그결과 1979년부터 10년간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승용차대수는 6만2000여대에서 7만 8000여 대로 늘어났음에도 사용대수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시는 1989년부터 시내 모든 주택가에 대해 자동차 속도를 시속 30킬로로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택가에 배기가스나 소음이 줄어들고, 자동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달릴 수 있어 교통사고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 자전거전용도로를 150킬로 정도나 정비했다.

 

노면전차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첫째, 대량소비 생활의 반성에서 실천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프라이부르크의 시민다움이 이러한 친환경정책을 가능하게한 것이고 또한 독일의 철저한 환경교육이 이러한 시민과 공무원을 길러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대안 찾기에 적극 나섰으며 지역 환경 NGO 등이 적극 참여해 시에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셋째, 환경단체장의 선택 및 행정과의 파트너십 형성을 들 수 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22년간 시정을 이끌어온 롤프 뵈메라는 환경시장이 있었고, 후임인 디터 잘로몬 시장도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당 시지부장 출신이다. 환경시장의 ‘태양도시 만들기’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끝으로, 프라이부르크는 홍보성 행정이 아니라 실천을 유도하는 행정을 했다는 점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나 자전거 타기가 편리한 반면, 도심에 차를 갖고 다니는 게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 ‘역발상의 행정’이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냈던 것이다.

이제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의 마인드를 우리의 도시행정에서 살려야 한다. 더상 ‘죽음의 에너지’인 원전에 매이지 말고 대안에너지, 대안적 사회 시스템 만들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 글: 김해창 | 희망제작소 부소장, 환경경제학 박사

- 이 글은 2011년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 20호를 통해 소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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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온도 변화에 따라서 살아 있는 생물들이라면 변화하는 온도에 대부분은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온도보호를 위하여 살아가는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적응하여 살아가기도 하고, 이동하지 못하는 동물은 땅속에서, 식물들은 씨앗을 만들어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봄날을 맞이한다. 이처럼 추위만이 동물들에게 영향을 줄 것 같지만 실은 더위도 많은 생물 종들에게 영향을 준다. 

 흰얼굴좀잠자리 / 사진: 정광수

 

겨울을 알의 상태로 보내는 우리나라의 좀잠자리류 중에는 북방성이 14종, 남방성이 1종(하나잠자리: Sympetrum speciosum)이 있다. 이들은 수온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서 북방성 종류들의 월동지나 서식지 등이 점점 북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점차 희귀한 종으로 전환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전국에서 불 수 있는 종들이지만 아마도 수온이 변하게 되면서 북방성 종들의 개체는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남방계열의 종들이 북쪽으로 올라 온다는 얘기다. 좀잠자리류 중에서 남방계인 하나잠자리는 제주도에서 점차 북상하여 한반도의 남부지역에 그리고 일부 개체들은 중부지방까지 선발대가 북상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좀잠자리류는 육식성으로 알의 상태로 월동하여 유충이 되면 다른 곤충이나 동물들을 잡아먹고, 성충이 되어서도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특정 먹이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충 시절에 특정 먹이가 필요한 나비류들 중에서 대부분 식물의 점진적 이동이나 식물 개체군의 감소(자연적, 인위적)와 밀접한 영향이 있다. 멸종위기종에서 흰나비과의 상제나비는 전형적인 북방형 종류로서 우리나라의 강원도 쌍용일대와 식생대가 유사한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었으나 최근 들어 확인되었다는 정보가 전혀 없다. 이들의 식초는 장미과의 살구나무, 개살 구, 털야광나무 등을 식초로하며 아직까지 쌍용일대에 가면 야산에 많은 개살구나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식초는 현존하나 이용하는 개체의 감소는 환경변화에 따른 감소로 볼 수 있다.

장다리개미류 / 사진: 김기경

 

이렇듯 나비류 중에서 위도별 변화에 따라 점차 서식면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종류들 중 남방노랑나비, 극남노랑나비, 물결나비, 왕나비 등이의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특정지역의 온도나 환경 변화는 지구전체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생물종 들은 적응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함께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물종들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시나브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 참고 : 2009년 기후변화 대응 한반도 생물종 구계 변화
연구, 국립생물자원관

 


- 글: 김기경 | 국립생물자원관(연구사)

- 이 글은 2008년 여름에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 16호를 통해 소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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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을 할 때였다. 친구들이 가끔 놀러와서 일을 거들어주었다. 수확물을 따는 일은 즐겁게 잘 하던 친구들이 흙속에서 지렁이만 나오면 소리를 지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지렁이가 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보다 훨씬 작고 흙을 부드럽게 하는 좋은 녀석이잖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이론적으로는 좋은 애인지 알지만, 그래도 징그럽잖아.”

도시 아낙들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였다. 엄마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의 태도를 따라 배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으로 분류하면서 배우는 시기가 있는데 엄마가 무서워하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유아일수록 경험을 해보고 배우는 것보다는 엄마의 태도를 보고 따라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아 엄마의 태도가 몹시 중요하다.


 


생물의 존재를 인간의 입장에서만 유익하다 해롭다를 따지는 것 자체가 몹시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유익한 동물인데도 비호감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것은 여러모로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는 모든 생명 있는 동식물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르쳐주는 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다.

비 오는 날이면 도시에서도 지렁이를 보게 된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지렁이를 오랜만에 만나면 어린이들은 어떻게 지렁이를 대할까. 지렁이가 얼마나 멋진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어린이라면 지렁이를 이유없이 괜히 밟거나 우산 끝으로 지렁이 몸을 찌르고 지렁이 몸을 잘라보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렁이는 보기에 귀엽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어린이들의 동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만나기만 하면 별 이유도 없이 징그럽다고 소리치며 괴롭히려는 사람들을 볼 때 지렁이는 얼마나 서운하고 슬플까? 국내에서 지렁이를 동화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최초(?)의 작품은 초등학생이 쓴 작품이었다.



1982년 춘천에서 태어난 이완이 초등학교 때 지구를 살리는 아이디어 18가지를 동화로 써서 ‘뒷뚜르 이렁지의 하소연’(1994년, 현암사)을 출간했었다. 이 동화를 통해 환경 문제를 개선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운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국제 연합에서 환경 보전에 힘쓴 청소년한테 주는 상‘청소년글로벌500’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작가 이완 님은 이제 어른이 되었는데 다시금 이렁지(지렁이를 뒤부터 부르는 이름)편만 떼어 2005년에 그림책으로 ‘뒷뚜르 이렁지의 하소연’(현암사/ 이완 글, 송교성 그림)을 만들었다.

지렁이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과 지렁이의 억울한 심정을 잘 표현해주어서 어린이들을 지렁이 편으로 만들어주는 그림책이다. 초등1~2학년 정도 어린이면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렁이가 흙 속에서 조용히 하는 위대한 일들을 알게 되면 지렁이가 하소연을 할 처지가 아니고 큰 소리 치고 살아야 되는 친구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렁이는 간단하게 보이는 환형동물이지만 많은 비밀을 갖고 있다. 지렁이는 잡식성일까? 초식성에 가깝다. 잎사귀가 썩은 부식토를 먹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앞뒤가 있을까? 있다. 지렁이 암수는 어찌 구별할까? 암수 한 몸이다. 하지만 두 마리가 만나야 생식이 가능하다. 알은 어디로 낳을까? 입으로 낳는다. 지렁이는 왜 땅을 그렇게 내내 기어다녀도 피부가 멀쩡할까? 지렁이는 강모라는 털이 있는데 그 털로 움직인다. 부드러운 피부로 땅을 그냥 기어다닌다면 피부가 다 너덜거려서 금방 죽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지렁이는 소리를 낼까? 도시에서 자란 어린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전 세계에 사는 지렁이가 7천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 우는 지렁이도 있다. 시골 할머니들이 간혹 지렁이 우는 소리를 흉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



지구살림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인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봐>(창비, 신순재 글, 장경혜 그림)을 펼치면 흙과 벌레들, 사람과 지렁이, 농사와 지렁이의 관계들이 재미나게 설명되어 있다. 지렁이 뿐 아니라 흙 속에서 일하는 여러 벌레들도 같이 알 수 있고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때 지렁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가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고 저자 자신의 3년간의 경험으로 지렁이를 기르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만약 지렁이를 길러 음식쓰레기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적극적 환경보호자라면 <지렁이를 기른다고? >(시금치/ 메리 아펠호프 지음)을 보면 확실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메리 아펠호프는 교육학과 생물학 석사 학위를 이수하고 고등학교 생물교사와 인터로첸 아트 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직한 학자였다.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수십 년간 지렁이 퇴비만들기를 실천하고 폐플라스틱으로 제조된 지렁이 퇴비화 용기를 파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집집마다 지렁이 기르기로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고 퇴비도 얻어서 손수 작은 농장을 일궈 일정량의 채소 수요를 자급자족한다면 상당히 많은 환경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적 방안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지렁이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5~7세 어린이에게 간단히 설명하기 좋은 책은 보림 출판사의 꼬마 과학자 시리즈 중<지렁이>가 있다.


 


<화분과 지렁이> (한림출판사, 마키 후미에 글, 이시쿠라 히로유키 그림) 그림책의 경우는 지렁이와 화분이 서로 도와서 예쁜 꽃을 피우는 과정을 통해 지렁이의 역할을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렁이의 중요성을 알 게 하는 그림책이다.


지렁이가 살아야 흙이 산다. 흙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뜨거운 물 함부로 하수구에 버리지 못하게 하시던 어르신들의 지혜가 다시금 생각난다. 조용히 우리 인간을 살게 도와주는 생명체가 어디 지렁이 뿐이겠는가.



- 글: 임정진 | 동화작가,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부 객원교수

- 이 글은 2008년 여름에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 19호를 통해 소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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