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DMZ일원에 월동하기 위해 보금자리를 찾는 두루미는 400여 마리에 이릅니다. 멸종위기종 1급 두루미와 멸종위기종 2급 재두루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두루미들은 왜 1600Km를 날아 연천에 오는 것일까요? 또 와서는 무얼 먹고 겨울을 날까요? 1년 중 7개월은 겨울인 시베리아에서 두루미가 5개월 동안 새끼를 기르고 가르치고 새끼가 하늘을 날아다닐 쯤, 시베리아는 혹독한 겨울이 오기 시작 합니다.

 

영하 40를 넘나드는 추위와 얼어버린 땅에서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되면 동토의 땅을 떠나 따뜻하고 먹이가 풍부한 남쪽으로 이동을 합니다.

 

연천 중면 횡산리 임진강 망제여울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리고 지친 몸을 추스립니다. 1600km를 날아오면서 소비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동물성 먹이인 작은 물고기와 다슬기 먹습니다. 그러나 주된 먹이는 탄수화물인 낙곡입니다. 율무와 벼 낙곡은 두루미들의 가장 주요한 에너지 공급원입니다.

 

임진강 민통선내 망제여울(구 빙애여울)

 

유조에게 여울에서 동물성 먹이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두루미부부

 

하지만 두루미들의 겨울나기가 최근 들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율무와 벼 낙곡의 부족입니다. 추수가 끝나면 볏짚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커다란 마시멜로 같이 생긴 '볏짚 곤포 사일리지'가 온 논에 널려 있습니다. 축산 농가의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볏짚을 곤포사일리지로 만들어 한 개에 5만 원에 판매됩니다. 이렇게 볏짚을 거둬가게 되면 두루미가 먹는 낙곡이 많이 줄어듭니다.

 

곤포사일리지 만들기 전 볏짚을 말아놓은 모습

 

볏짚을 수거하지 않은 논과 수거한 논

 

1990년대 이전에는 농부들이 추수가 끝나면 볏짚을 그대로 깔아놓고 이듬해 농사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두루미들은 수천 년 동안 그런 농업 환경에 적응해 낙곡을 먹어가며 연천에서 겨울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식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DMZ일원에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곳곳에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논과 밭은 인삼밭으로 변해가면서 두루미는 먹이터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연천군 중면 횡산리 DMZ일원의 인삼밭

 

율무두루미 400여마리가 매년 겨울에 도래하는, 연천군 중면 횡산리 일원은 임진강 최상류에 DMZ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2개의 여울과 여울 주변에 자리한 10만여평의 논과, 산간에 율무 밭이 넓게 산재해 있습니다. 넓은 논과 수백만평의 밭 두루미들이 한 겨울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볏짚은 가축 사료용으로 수거해가고 율무는 연작을 할 수 없어 해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해거리 때문에 율무농사를 짓지 않고 콩을 지은 밭에 율무두루미가 찾아왔습니다. 율무두루미들은 전년도의 기억을 가지고 율무밭을 찾아왔지만 보이는 것은 콩 타작을 하고 남은 부스러기뿐입니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묵정밭까지 걸어 올라가 보지만 잡풀뿐입니다. 사정은 이 곳 뿐만 아닙니다. 횡산리 이곳저곳 콩밭만 가득합니다.

 

2015년 10월 경작한 율무밭

2016년 경작하지 않은 율무밭

 

환경부는 지난 2002년부터 겨울 철새의 먹이 확보를 위해 '생물다양성관리계약'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논에 볏짚을 그대로 두게 하고 일정액을 보상해주는 '볏짚존치'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연천은 2013년부터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임진강 일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민통선내에 자리하고 있는 두루미 먹이터인 횡산리 10만평의 논은 축산농가가 곤포사일리지를 만들기 위해 논 소유자와 관리계약을 체결해서 두루미들의 먹이터인 횡산리에서 볏짚존치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두루미들은 배고픔에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농가의 볏짚 수거가 계속 확산될 경우 겨울 철새의 먹이 확보는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겨울 철새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큰 두루미는 하루 약400g(4000립중)율무낙곡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00마리의 두루미가 율무낙곡400g을 먹을 경우 하루 160kg의 율무낙곡이 필요합니다.

 

두루미의 월동 기간인 10월말부터 이듬해 3월 하순까지 5, 150일을 생각해보면 약24톤의 율무와 낙곡이 필요한 셈입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와 연천군청에서 5개월간 두루미 먹이로 뿌려주는 4톤의 먹이와 '볏짚존치' 사업은 그야말로 '푸른바다속의 좁쌀'에 불과합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나마 같이가치와 한 땀 한 땀 보태주신 여러분들의 정성이 두루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장정의 길에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연천 율무두루미를 위한 땅 한 평 사기에도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습니다.

 

201710월말 연천군 중면 임진강 최상류 망제여울에 두루미들이 유조를 데리고 돌아오게 하여 새로이 난 유조와 그들의 형제자매, 부모와 함께 임진강가에서 자유로운 삶은 가질 때, 두루미가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문화적 풍요로움은 더욱 커져 갈 것입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DMZ 위원회 백승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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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마지막주 토요일, 망우리공원은 버찌가 빨강게 물들자마자 검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화사한 꽃이 예뻤던 4월도 잠깐, 어느새 열매는 삽시간에 익는다. 망우리가 근현대 역사인물이 잠든 특성 때문일까. 계절과 시간의 변화도 그들의 삶처럼 압축되어 나타난다.


오늘은 18명의 시민들과 함께 망우리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간혹, 참석하신 분들의 성향이나 직업, 나이에 따라 관심을 끄는 묘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관심이란 한 인물에 대한 존경심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위인에 대한 신비감과 무조건적 영웅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위인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좀 더 견고하게 개선할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이를 떠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의 잘잘못을 섣불리 논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승려의 묘 옆에 부인(人)의 묘가?

망우리공원 순환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도로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묘가 올려다 보인다. 20여 미터 완만한 계단을 오르면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나타난다. 바로 승려였던 만해와 그의 부인의 봉분이다. 비석에도 만해한용운선생묘라는 표기와 부인유씨재우(夫人兪氏在右)’라고 표기돼 틀림없는 한용운 선생의 묘임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김영식 작가가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 한용운 선생의 묘는 둘 중에 어떤 것일까요?


참가자들은 여러 추측이 이어진다. 김영식 작가 말에 따르면, 참배객들이 엉뚱한 봉분에 헌화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결국 오른쪽이라는 것은 우리가 묘를 바라본 입장에서가 아닌, 머리를 위로하고 누운 고인의 입장에서의 방향을 뜻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18798,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납니다. 16살이던 1894년에 돌연 출가를 하게 됐는데요. 일설에 따르면 선생의 부인의 해산을 전후로, 시장에서 미역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고 나갔다가 그 길로 출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고향땅인 홍성을 찾지 않았고, 첫 번째 부인의 소생인 아드님과 대면하기조차 꺼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영식 작가가 출가에 뒤이어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까지 수여받은 한용운 선생의 공로를 언급하였다. 하지만 부인의 봉분과 더불어 처음 알게 된 선생의 행적에 참가자들은 뜨악한 표정들이었. 게다가 승려임에도 두 차례의 결혼 경력은 지금이나 당시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임에 틀림없다. 

'상남자셨구나.' 

승려신분으로 독립운동에 그리고 두 차례의 결혼을 떠올리며 참가자들 사이에 묘한 웃음과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영식 작가가 고은 시인의 한용운 평전에서 지적된 내용을 언급한다. 『…연설에 뛰어나고 지조가 강해 지도자적인 능력을 갖추었으나, 수시로 파계를 한 승려답지 않은 행동, 첫 번째 처와 아들에 대한 무정한 처사, 문학적으로 자기보다 앞선 최남선에 대한 시기심...김영식 작가에 따르면 한용운 평전은 위인의 무조건적인 신격화 또한 우리의 눈을 가리는 행위로 경계해야 할 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용운 선생이 총독부에 보낸 탄원서와 조선불교유신론에서는 대처의 의미를 짐작할만하다조선불교의 부흥을 위해, 승려가 거지행각을 하면서 탁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결혼도 하고 가정도 가져 안정된 바탕에서 승려생활을 해야 불교가 발전할 수있다는 소신이었다.


만해는 기미독립운동 민족대표의 33인 중 끝내 지조를 지킨 오세창 등과는 죽을 때까지 교류하였으나, 변절한 최린, 최남선과는 상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한용운이 집을 비운 사이, 최린이 찾아와 딸에게 용돈을 주고 갔는데, 그 돈을 들고 최린의 집에 찾아가 내던진 일화는 만해의 비타협적 생각을 가히 짐작할만하다.

만해는 1944년 지병인 신경통으로 와병하다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시신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홍제동 화장터를 피해 미아리에서 불교식으로 화장을 하고 남은 유골을 망우리 묘지에 안장했다.

 

수채화같았지만 절망적이었던 사랑

1938년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명 이남덕)는 미술실기 수업이 끝나고 우연히 수돗가에서 나란히 서서 그와 붓을 빨게 되었다. 조선인 학생으로 2년 선배인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운동과 노래까지 잘해 당시 여학생들의 선망이 대상이었다. 수돗가에서 붓을 빨던 일을 계기로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는 일제가 강점하고 있던 조선땅으로 귀국해야 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아쉬움을 달래던 마사코는 해방이 채 되기도 전인 19454월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와 5, 그의 고향인 원산에서 결혼한다. 그의 남편의 이름은 이중섭.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부산과 제주를 전전하는 궁핍한 생활 끝에 병을 얻어 두 아들과 1952년 일본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1953년 친구의 도움으로 잠시 일본에서 가족들과 해후하였으나, 일시체류 신분이기에 다시 기약없는 이별을 맞아야 했다.

김영식 작가에 따르면 다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입국 비자를 받기 위한 이중섭의 노력은 절박한 것이었다.

마사코가 일본에서 어음을 주고 사 보낸 책을 이중섭이 팔았지만, 결국 판매대금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후배가 중간에서 횡령을 한거죠. 그리고 이중섭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게 1955년 서울과 대구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이었습니다. 전시회는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림을 외상으로 가져가 그림값을 지불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그림을 훔쳐가는 사람도 있었던 겁니다...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 친구들이 돈을 모아 밀항선을 타기를 권했지만, 그 돈마저 어떤 시인이 며칠만 쓰고 돌려준다며 가져가 결국 받지 못했다.

김영식 작가가 말을 잇는다.


화가 이중섭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그림 황소를 보면, 석양의 붉은색을 배경으로 누런 소가 슬픈 눈으로 우는 듯 하는 모습입니다만, 그게 바로 이중섭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황소처럼 힘세고 야성적이지만, 온순한 성격의 이중섭은 세상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후, 이중섭의 우울증은 극에 달했다. 일본에서 온 아내의 편지는 뜯지 않았고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황달, 영양실조, 간장염이 발병하게 된다. 그리고 1956년 서대문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죽은 후, 무연고자로 처리돼 있다가 사흘 만에 고향 친구인 김병기에 발견된다. 그리고 홍제동 화장장에서 화장돼 유해의 반은 망우리에, 그리고 나머지는 일본의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원했던 혹은 원치 않았던 '이별'의 엇갈린 운명

오로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이중섭에 비해 만해는 종교와 속세를 오가며 불교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벌인다. 1952년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가족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던 이중섭에 비해, 자기의사로 속세와 이별을 결심했던 만해의 경우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귀의와 잔인한 시대의 가슴 아픈 이별도 저마다 타고난 운명을 넘어서지 못 하는 걸까?

대향 이중섭이 잠시 일본에서의 가족과 짧은 해후이후, 가족을 만나기 위한 노력은 필사적인 것이었다. 서울과 대구에서 개최한 개인전의 실패는 그를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다.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서 시인이었던 친구의 배신은 의지할 곳 없는 중섭을 철저히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은 시인 구상이 이중섭의 2주기 추도기에 기고한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 세상에서는 중섭이 병들어 미쳐 죽었다고도 하고 굶어 죽었다고도 하고 자살했다고도 한다. 정신병원엘 두 차례나 입원까지 하였으니 병들어 미쳐 죽은 것도 사실이요. 먹을 것을 공궤치 못했으니 굶어 죽인 것도 진상이여, 발병 1년 반 그나마 식음을 완강히 거부했으니 자살했다 하여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그를 살게 하고 죽게 한 것은 오로지 고립이었다. 중섭은 너무나 그림밖에 몰랐다. 그의 생존의 무기란 유일 그림뿐이었다...”

고뇌하는 이중섭(친구이자 화가 한묵이 그린 스케치. 1954년 스케치)


출가를 통해 세상과 이별하고, 승려의 길을 선택한 만해 한용운의 삶도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속세와 종교 사이에서 끊임없는 번뇌가 예상된다. 이미 한 차례의 결혼 이후 출가 그리고 재결혼 등은 승려의 파계를 논할 정도로 당시 시대에서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보여 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교에 귀의한 몸으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의 지조를 지키기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중섭은 그렇게 그리워하던 가족들을 살아서 만나지 못했다. 그의 무덤에 세워진 비석은 사망 1년 후, 후배 차근호가 세운 것이다. 비석 오른편에 이중섭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들 태현(야스가타)과 태성(야스나라)의 부둥켜안은 모습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만해 한용운 선생은 승려였으나, 결국 부인과 무덤을 나란히 하게 된다.

이중섭 묘비는 그가 사망한 지, 1년 후 차근호에 의해 세워졌다.


승려로서 속세와 이별을 했던 한용운 선생,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가족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 했던 화가 이중섭. 원하던 원치 않았던 두 개의 이별의 결과, 설사 다른 시대를 살아갔을 지언정 확연하게 엇갈린 운명을 확인하게 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세속적 삶의 만남에서 두 분의 생애가 다소나마 뒤바뀌었다면 어떨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운명은 본래 희망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인연과 같아 손길이 닿지 않는 아득한 곳에 있다며, 이중섭 묘비의 들꽃이 고개를 떨굴 뿐이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19541121일 일본의 아내에게 보낸 이중섭의 편지중)


자료참조 '그와 나 사이를 걷다' (김영식 저/호메로스/2015)

6월 망우리공원 인문학강의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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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세계내셔널트러스트대회 참가기
Common Threads; Different Patterns

 


공동집필: 조명래, 박도훈

매 2년 마다 열리는 세계내셔널트러스트대회가 영국내셔널트러스트 주최로 16회를 맞이하여 영국 캠브리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영국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2인의 초청을 받고 배청 이사님의 후원으로 조명래 공동대표와 박도훈 부장이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문승현 팀장이 동행하여 한국에서는 모두 3인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9월7~11일에 진행된 이번 16회 세계대회 주제는 '공통의 실타래, 다른 무늬(Common Threads; Different Pattern)'였습니다. 직역하자면 그렇지만 뜻은 새겨봄직 합니다. 'Common Threads'는 '공통적 맥락'을 뜻하는 용어로 세계 각국의 내셔널트러스트가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뜻하며 'Different Pattern'은 지역별로 다른 문화와 제도에서 나타난 '무늬' 즉 지역 특성을 가진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말합니다. ‘21세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역할과 목적’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번 대회는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유산을 잠식하는 개발압력과 전 지구적 위협을 극복할 대안과 전략을 공유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번 대회는 호주,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포루투갈, 버뮤다, 인도네시아, 슬로베니아, 체코, 한국, 중국, 일본, 인도, 우간다, 짐바브웨 등 50여 개 국 70여 단체, 200여명의 참가자가 등록하였으며 숙소는 캠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전체회의는 캠브리지대 웨스트로드 콘서트홀에서 열렸고 개별 활동 프로그램들은 캠브리지 근처에 위치한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영국NT대표 찰스 황태자의 영상 환영사

INTO 집행위원 및 임원진: 위원소개 링크


첫날(9월7일) 총회가 있었습니다. INTO(세계내셔널트러스트기구)의 경과보고와 정관에 따른 새로운 임원 선출이 있었습니다. 회장으로는 영국내셔널트러스트 전임 사무총장(2001-2012), 피오나 레이놀즈경(Dame Fiona Reynolds) (Dame:여성께 부여하는 Sir), 부회장으로 우간다의 에밀리 드레이니가 선출되었습니다. 사무총장으로는 캐서린 레오나드(1999년 영국 NT방문 때 첫 대면이 있어, 한국NT를 잘 기억함), 그리고 한국NT 조명래 대표를 포함한 12명의 집행위원이 선출되었습니다.
신임 피오나경은 취임사에서 “INTO회장이 된 것을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국NT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운 좋게도 다섯 번이나 ICNT(세계대회)를 참여했습니다. 재직 중에 INTO가 설립되고 글로벌 네트워크로 발돋움하는 용감한 도전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 관계를 더욱 새롭게 하고 협력해가는 기회를 즐기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전 총회 이후, 개회기념 주제발표(NT운동의 전망과 도전) 및 강연이 오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영국내셔널트러스 대표(president)인 찰스 황태자의 영상 인사도 있었습니다. 저녁엔 킹스칼리지의 강당에서 축하 파티가 있었습니다.
 

캠브리지 킹스칼리지 강당은 영화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둘째 날(8일),  캠브리지 근방(동/북쪽) NT 사이트인 Anglesy Abbey(문화유산), Wicken Fen(영국 NT 최초 획득한 자연유산)을 방문한 후 현지에서 ‘문화정체성 지키기’라는 주제에 대한 토론이 있습니다. 글로벌화 되어가는 문화동화현상에 지역의 유형 혹은 무형의 인류문화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각 나라의 사례와 대안을 제시하는 토론이었습니다. 저녁엔 신임회장 주재로, '향후 INTO 활동방향/과제에 관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앵글 수도원

위켄팬 습지(영국최초의 자연유산)

영국내셔널트러스트 가게(각 사이트와 지역 명물, 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Ickworth 장원

영국NT사이트 답사해설은 대부분 은퇴 시니어인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주제별 그룹토론이 텐트별로 진행되었습니다. 관심있는 주제를 선택해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다루고 싶은 주제가 몇개? 전부 다 필요해 ...ㅠㅠ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
  -브랜드 전달과 연관
  -펀드레이징 기법
  -자원봉사 활용하기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기
  -법제와 거버넌스
  -캠페이너와 비평가와 같은 우리의 역할

셋째 날(9일), 캠브리지 근방 '뷰리 세인트 에드문즈(Bury St. Edmunds)의 NT 사이트(Theatre Royal, 18세기 최초 극장)에서 'Best Practices' 발표가 있었고, 장소를 다른 사이트인 Ickworth 장원으로 옮겼습니다. 저택과 정원 등을 답사하고, NT활동 관련된 주제(펀드레이징, 거버넌스, 소통 등) 그룹토론회가 정원의 텐트 속에서 오후 동안 열렸습니다. 이후 저녁 식사 전에 지역 미팅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지역모임에서는 한국, 타이완,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참가했으며, 향후 아시아권 사이의 활동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아시아 내셔널트러스트 회의를 개최한 후(2008), 후속 모임이 없음을 지적했고, 다른 나라가 이어서 개최할 것을 제안, 인도네시아에서 내년 1월에 아시아권 문화유산 커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아시아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세션을 포함시켜 진행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아시아퍼시픽 지역모임 토론

넷째 날(10일), 캠브리지 근방(서쪽)의 대장원 Wimpole(NT 직원 42명, 자원봉사요원 500명)에서 NT가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농업활동에 대한 설명과 현장 토론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땅과 경관과 자연'. 주로 이 사이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물살리기 캠페인'에 대한 토론과 농약과 화학비료로 침식되어가는 토질의 개선 등 농업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장원의 헛간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습니다. 영국식 포크댄스를 배웠는데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Wimpole Hall

동영상으로 보실까요? 올드한게 놀기 딱 좋았습니다.


 다섯째 날(11일),  다시 캠브리지대 콘서트홀에서 전체 마무리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체 회의 전에 신임회장 중심으로 집행위원회가 열렸습니다.(우리가 일찍 떠나야 한다하여 오후 일정이 오전 일정으로 옮겨졌음) 12명의 집행위원들이 모두 참가한 첫 집행위원회에서는 집행위원회 운영에 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집행위원회에서 매 2개월마다 온라인 회의를 개최하며 일년에 한번씩 대면(face-to-face) 회의를 갖도록 합의하고 첫 회의는 11월6일에 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전체 회의가 시작되면서 특강이 있었고, 대회활동에 대한 간단한 평가가 있었으며, 신임회장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신임회장은 '가족', '성공', '목소리' 3가지 키워드로 INTO를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끝으로 차기 회의개최국인 인도네시아 대표들의 수락인사, 문화공연 등이 있는 후, 대회가 공식 종결되었습니다.
 

차기 ICNT 개최국 인도네시아에서 축하공연을 마련했습니다.


이상이 간단한 16차 내셔널트러스트 세계 대회의 주요 내용입니다.
인상 깊은 것은 이번에 ‘루안 헤리티지재단’이 중국의 첫 INTO의 공식 멤버로 참여하였다는 것과 신생 동유럽의 ''체코 내셔널트러스''는 활동본부가 영국에 있으면서 글로벌 모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적 구호활동 등도 지금은 국경이 따로 없는 시대이지만 자국의 유산보전을 위한 모금활동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고정관념을 버려야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대회는 영국내셔널트러스트 중심으로 모든 게 다루어지다 보니, 우리 같은 신생단체들이 주체적으로 참가해 함께 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흐름과 동향, 다른 나라의 활동 등에 대한 직간접 체험은 우리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다시 한 번 성찰하면서 한 걸음 더 나가게 하는 데는 적잖은 도움이 된 듯 합니다. 특히 향후 NT활동은 문화유산 확보와 보전에 더 역점을 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 또한 국내 관련 단체들과의 협력도 더 강화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세계대회를 우리가 개최할 가능성도 꿈꾸어 봤습니다.

INTO 2015 세계대회 포스팅 : http://www.internationaltrusts.org/2015-conference-in-england 

INTO 총회 소식: http://www.internationaltrusts.org/14375

INTO 집행위원소개: http://www.internationaltrusts.org/about-into/executive-committ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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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의 가장 중요한 생태특징, 논에서 자란다


매화마름(Ranunculus kadzusensis MAKINO)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수생식물입니다. 지름 1cm의 하얀 꽃은 물 위로 피어나며, 꽃은 물매화를 닮고 잎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이라 합니다. 4월말에서 5월말까지 군락(群落)을 이루며 개화하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입니다.


매화마름은 발아, 생장, 결실까지 모든 과정을 육상과 수중에서 거칠 수 있는 독특한 식물입니다. 여기에서 육상이라 함은 수분을 머금은 논두렁 등을 가리킵니다. 수생식물이기 때문에 생육환경 조건 중 물이 가장 중요하나, 물가 주변의 수분량이 높은 흙에서도 짧은 줄기 와 잎의 형태로 자랍니다.

매화마름은 경작중인 논에 자랍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매화마름 군락지의 생태적 특징입니다. 매화마름 군락지는 주로 서해안을 따라 있는 논에서 자생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이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서식지를 살펴보면 강화도, 김포, 경기 화성시 시화호 일대, 충남 태안, 전북 고창 변산반도 일대, 전남 영광군 법성면 일대 등지입니다. 발견된 모든 지역은 경작 중인 논이며, 현재 보고된 전국 25곳의 서식지도 모두 경작지입니다. 

경작중인 논이 매화마름 서식에 중요한 점은 바로 농부의 ‘경작’ 행위를 통해 매화마름이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직 개화 상태에 있거나 종자를 퍼뜨리지 못한 매화마름을 배려한다고 그 상태를 지속한다면, 매화마름 서식지는 곧 다른 풀과의 경쟁에서 밀려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휴경논에서는 매화마름이 자라지 못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모내기 전의 트랙터 작업은 매화마름을 꺾고 밀어버리는 훼손행위로 보입니다. 그러나 매화마름 입장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종자를 퍼뜨리고 종자가 떨어진 논바닥에 벼 이외의 다른 식물이 침입을 차단함으로써 다음번 발아기회를 획득하기 때문에 농부의 ‘경작’은 매화마름 서식지 보존의 방어막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가을에 싹트는 매화마름, 기특한 생애주기


매화마름의 또 다른 생태적 특징은 성장주기입니다. 매화마름은 가을에 벼 베기가 끝난 논에서 물을 대기 시작하는 11월쯤 발아를 시작합니다. 겨울에 물속에서 발아를 시작한 후 3월부터 빠른 성장을 시작하여 4월 중순에 개화하기 시작합니다. 5월 중순부터 모내기 전인 5월말까지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뜨립니다.

11월 20일, 새싹 틔우는 매화마름


11월20일, 축축한 논두렁에서 자라는 매화마름



매화마름논의 1년을 그림으로 볼까요? (클릭해서 큰그림으로 보세요)




벼베기가 끝난 후, 물을 대는 매화마름 논


줄, 부들, 마름, 갈대 등은 몸을 누이고 겨울을 맞이 합니다.


11월의 매화마름 논은 이제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매화마름이 발견되는 논은 대개 1970년대에 간척된 논으로 최근까지도 수리조건이 좋지 않아 겨울동안 논마다 물을 담고 있었고 이른 봄에는 경작을 하지 않습니다. 매화마름은 0℃ 이상, 20℃ 이하의 수중에서 발아하고 생장합니다. 물온도가 20℃ 이상이 되는 여름철은 발아도 되지 않고 줄기와 잎은 녹아버립니다. 

매화마름 생장의 최적 수온 15℃ 수조에서 자라고 있는 매화마름


11월의 매화마름 논, 이제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벼가 주인이었던 6월~10월을 뒤로하고 내년 봄 5월까지, 이제 논의 주인은 매화마름입니다. 겨울의 문턱 11월을 맞이하는 논의 풍경은 매화마름 숨은그림찾기로 새생명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을 가득 채운 논은 논습지 생명들의 쉼터가 되고 얼음이 얼면 아이들의 썰매장이 되겠지요. 



벼베기 후, 11월의 매화마름 논


매화마름의 또다른 이름 '개말'

강화도 초지리에서 매화마름은 논두렁에 자라는 식용 ‘말’과 달리 먹을 수도 없으면서 농사를 방해한다고 ‘개말’이라 불렸습니다(초지리 이OO, 김OO 할머니). 대다수 지역사람들에게 매화마름의 가치는 아직도 ‘개말’이라는 평가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매화마름 자체가 농민들에게 필요한 자연자원이 아닌 상태이고, 이들이 매화마름 보존에 기울여야 할 노력에 비하면 그에 비해 되돌아올 혜택은 불명확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참여적 매화마름 관리를 도모하는 데 여러 장애가 존재하고 있지만 매화마름이 인간에게 어떠한 가시적 혜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부족 자체가 매화마름 멸종의 위협요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 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매화마름 논습지 관련 포스팅>


매화마름 논, 벼베기 하는 날

'벼꽃' 벼도 꽃이 피나?

매화마름논의 잡초들도 이름이 있어요

2012 강화 매화마름 에코 볼런투어 "행복한 여행, 나를 위한 봉사였어요"

생명의 터, 강화 매화마름 논습지 "모내기 하는 날 찾아온 저어새 가족"

한국논생물조사의 날 "생명도 밥도 논이 주는 선물, 논습지네트워크"

강화갯벌, 국립공원 VS 조력발전

작은 꽃이 만드는 마법같은 세상-‘꽃논 사랑’ 캠페인

[강화 매화마름 에코투어] 강화도의 미래는 생태관광

<사진과 이야기> 2012년 3월 매화마름과 우렁이 친구들이 자라는 초지리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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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는 제10회 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에 응모된 지역을 지역별로 소개하는 글입니다. 내셔널트러스트 시민공모전은 8월 31일까지 접수마감이며,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네티즌에 의한 인터넷 투표가 진행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자연과 문화 유산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인터넷 투표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시민공모전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ntrust/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미인폭포와 통리협곡 

통리협곡은 삼척시와 태백시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협곡 이름은 태백시 통리(지금의 통동)에서 딴 것이다. 1억 50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되어 2600만 년 전쯤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면적은 1만여 평이다. 길이는 10㎞, 최대 깊이는 270m이다. 점토암과 실트암으로 이루어진 이암(泥岩), 자갈로 이루어진 역암(礫岩), 모래입자가 굳어져 만들어진 사암(砂岩) 등이 비바람에 깎이면서 만들어졌다. 협곡이 만들어지는 데만 1000만 년 이상이 걸렸다. 협곡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고운 모래와 진흙이 굳어 몇 겹으로 차곡차곡 쌓인 구조를 하고 있다. 특히 고지대에 움푹 들어가 있어, 산 아래쪽부터 올라가는 대개의 계곡 탐사와는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또 협곡이 시작되는 지점 바로 위에 삼척의 절경으로 꼽히는 미인폭포(美人瀑布)가 있는데, 협곡을 거쳐 오십천(五十川)으로 흘러든다. 미국 애리조나주(州)의 그랜드캐니언과 생성과정이나 지질학적 특성이 비슷하다.


미인폭포 전경


강물이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은 주로 침식과 퇴적작용에 의해서이며 침식작용이 빚어내는 조화의 대표적인 예는 협곡이다. 협곡하면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지역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다. 통리협곡은 그 정도의 규모 상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곳이다.


이 지역은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퇴적암 지역이다. 이암부터 역암까지 각기 다른 암석으로 구성된 퇴적층은 그 당시의 기후환경변화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 지역이 다른 지역과 다르게 300m가까이 침식된 이유는 '지층의 단단한 정도의 차이'와 '활발한 단층작용'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생대 지층에 포위돼 있으면서 고생대 지층 위에 쌓인 퇴적암지역인 미인폭포 일대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더 오래된 다른 지층보다 상대적으로 덜 단단해 풍화와 침식에 약하다는 것이다. 협곡을 흐르는 오십천은 동해가 열리고 태백산맥이 솟으면서 물살이 빨라져 침식을 가속했으며, 상류로 향하는 이 침식의 선단에 미인폭포가 형성되었다. 즉, 이 지역의 폭포는 한반도 융기의 증거이기도 하다.



협곡의 퇴적층


이와 같이 통리협곡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협곡지형이면서 퇴적암지층이 나타나는 대규모 지형으로써 지형학적/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또한, 주변의 산악지형과 어우러지는 대규모 협곡과 폭포는 경관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 가치가 더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삼척시가 탄광마을이었던 과거에는 탄광의 영향으로 인해서 검은 물이 흐르던 지역이다. 탄광산업이 축소된 현재에는 산업물질로 추정되는 것들이 흘러내려와 이 지역의 경관에 대한 훼손이 심각하다. 2012년 8월 4일에 이 지역을 방문했을때, 이 지역을 방문했던 과거(2008년)와 비교하여 쓰레기의 양이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쌓여있었다. 또한, 물색깔의 변질이 관찰되었으며, 이로 인한 침전물이 하천을 오염시키고 있는 상태였다.

 


정선 고성산성제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고방마을 앞산에 있는 고성산성은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고구려가 남진을 하면서 쌓은 산성으로 1995년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되었다. 1993년부터 인근의 고성리, 덕천리, 운치리 주민들은 고성산성보존회를 결성하여 매년 산성제를 지내며 성곽보존 운동을 펴왔고 정선군의 지원으로 1999년까지 무너진 성곽의 부분 곳곳을 보수하는 공사를 하기도 하였다.

1997년 동강댐 건설논란과 2000년 동강댐 백지화로 인하여 외부에 동강이 많이 알려졌지만 지역주민간 보이지 않는 갈등과 동강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자 2007년 동강발전청년회에서는 고성산성제를 확대하여 동강지역의 자연생태과 문화를 지키고 역사를 보존하고 알려가는 지역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여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동강 12경중 7경이 고성산성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생태.경관적 가치뿐만 아니라 섶다리, 전통결혼식, 삼굿, 콧등치기 등 전통문화를 지키고 지역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노력 속에도 외지인의 유입과 팬션 건립 등 무분별한 개발사업과 노령화, 인구감소로 인한 생태적, 문화적 훼손과 공동체 유지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고성산성제의 활성화와 보존활동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고성산성과 주변 경관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고방마을 앞산에 있는 고성산성은 규모 면에서는 큰 산성은 아니다. 언제 성을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 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펼칠 무렵 고구려가 쌓은 것으로 보인다. 고성산성을 둘러보면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 성을 쌓았을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안에서 밭을 일구다가 여려 개의 돌화살촉 등을 발견하기도 했다. 성 위에서 보면 동쪽으로 가수리에서 운치리 수동과 점치를 서두르지 않고 흐르는 강 상류가 훤히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읍내로 향하는 구레기 고래, 서쪽으로는 연포, 구포, 가정마을을 휘도는 물줄기가 높은 겹겹의 뼝대에 몸을 숨긴다.

고성산성제 보존활동 




- 전통음식: 6개리 마을의 부녀회에서 마을별로 강원도 전통음식 4개씩를 준비하여 모두 20-30여개의 전통음식을 만들고 방문객들에게 직접 맛보고 인기투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모두부, 순부부, 콩갱이, 보리밥, 감자부침개, 묵사발, 전병, 옥수수범벅, 올챙이묵, 옥수수떡, 민물고기튀김, 곤드레밥, 메밀국수, 콧등치기, 감자 옹심이, 감자만두 등이 있다.

- 고방정: 고방마을 숲에 있는 고방정은 1972년 느티나무가 숲을 이룬 곳을 보호하고 가꾸자는 뜻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금을 해 건립한 정자다. 시멘트 기단 위에 6각 지붕의 목조로 된 정자로 안쪽에는 이선호 외 12명의 이름과 고방정 시공을 한 목수 이름을 기록한 ‘고방정설립자명단’ 현판이 있다. 본래는 양철지붕이었으나 2008년 기와로 교체했다. 고방정은 고성리 주민들의 문화공간이자 고성산성 등을 찾는 방문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을 중심으로 1993년부터 매년 고성산성제가 열리기도 한다. 고방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숲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  전통결혼: 6개리 마을 주민들 중 연세가 많지만 아직 결혼식을 하지 못하거나, 외국에서 온 결혼이민자와 마을의 총각이 고성산성제와 함께 마을주민의 축하를 받으면서 전통결혼식을 올린다. 축문과 음식 등 모두 주민들이 직접 준비를 하는데, 신랑은 나귀를 타고 섶다리를 건너서 입장을 하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입장을 하는 풍경이 정겹다.



- 섶다리: 섶다리는 나룻배로 오가기 힘든 겨울을 나기위해 놓는 다리로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큰물이 나면 떠내려가는 다리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하며 음식도 나누어 먹곤한다.

그 외에 삼굿구이, 고성산성 트레킹, 동강생태탐방 래프팅, 떡메치기, 송어잡기 체험, 옥수수 빨리 먹기, 나귀타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고성산성제는 이루어진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천 일대



연곡천 위성사진


연곡천은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의 진고개에서 발원 후 오대산국립공원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가는 총 유로 20.4Km의 하천이다. 본 하천의 상류부에는 대규모의 도시나 축사, 탄광 등의 산업시설, 댐건설 등의 오염원이 없어 영동지방의 동해로 흐르는 하천 중 드물게 자연 상태가 잘 유지되고 있는 청정하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연곡천은 상대적으로 하천의 유로가 길고 동대산(1433m), 철갑령(1012m), 운계봉(630m) 등의 높고 가파른 산지를 따라 흐르면서 침식작용을 통해 협곡이나 기암괴석과 같은 자연경관을 연출하여 오대산 국립공원의 명승지 중 하나로 꼽힌다.


연곡천 하류부

연곡천은 높은 산지에서 발원하지만 총 유로의 길이가 약 20Km정도로 비교적 급한 경사로 빠른 하천의 흐름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천수의 순환이 원활하여 항상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천 직강화 공사나 산책로조성사업을 하천의 원시적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그 경관이 아주 수려하다. 연곡천에는 멸종위기2급 어종인 가시고기와 한국토종어류인 북방종개를 비롯한 새미, 쉬리, 피라미, 버들개, 대륙종개, 참갈겨니, 돌고기 등과 같은 청정 수역에서 사는 어종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잡아먹고 사는 천연기념물 수달의 흔적도 발견된다.

 


                                                  산란을 위해 하천을 오르는 황어떼

             

                                                               보를 오르는 황어

 

또한 본 하천은 매년 3~4월 산란을 위해 바다로부터 황어가 찾아온다. 황어는 잉어과의 어종으로 부화 후 바다로 건너가 일생을 바다에서 살고 산란기에만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회유성 어류이다. 이 황어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봄철 강을 따라 올라오는 황어들은 철새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며 대규모로 산란을 하는 황어의 특성상 황어의 알과 치어는 하천의 많은 어류들의 좋은 먹이가 되며 이로써 황어의 개체수와 다른 어종의 개체수 간의 평형이 유지된다.

하구는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하천의 종점이며 하천과 바다의 점이지대이면서 생태적 전이지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가진다. 많은 하천하구는 방파제 건설 등을 통한 인공하구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연곡천의 하구는 자연 그대로의 하구를 유지하고 있어 갈수기에는 하천퇴적물로 인해 하구가 막히고 우기에는 하천 범람으로 하구가 개방되는 갯터짐작용이 일어나는 자연 피드백 작용을 통한 생태계 평형이 유지되며 맑은 담수와 깨끗한 동해바다가 만나는 지역으로 연곡천의 수많은 하천생물과 동해바다의 해수어들이 공존하고 매년 수많은 철새들이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곡천의 하구에서는 민물검정망둑, 뱅어, 미끈망둑, , 담치(홍합) 등과 함께 중대백로, 민물가마우지 등의 서식한다.

 

                                                        송림보의 위치와 형태

국내의 하천에는 치수목적의 댐과 각종 용수확보 목적의 보, 하국둑, 저수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수리구조물을 설치하면 하천의 상하류의 특성이 바뀌게 되어 수생태계의 서식처 교란과 단편화가 일어나고, 바다와 하천을 왕래하며 살아가는 회유성 생물들의 이동통로를 막아 이동을 방해하여 어족의 개체수가 감소하거나 멸종될 수도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하여 물고기들이 보를 넘을 수 있도록 보를 설치하지만 하천마다 서식하는 어류들의 특성을 고려하지않은 형식상의 어도 설치로 인해 오히려 많은 어류들이 어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연곡천의 경우에도 농업용수 확보 목적으로 송림보를 비롯한 여러 보가 가장 큰 규모의 송림보에는 어도가 설치되었다. 송림보에는 사다리식, 계단돌망태기식 어도가 설치되어있다. 하지만 송림보의 낙차에 비해 어도의 경사가 너무 급하고 물살이 강해 상류로 가던 황어들이 어도 밖으로 튕겨나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으며 지난 태풍 루사의 피해로 그나마 있던 어도도 많은 부분 파괴되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사다리형 어도에서 튕겨나가 죽은황어들


 

결국 상류로 올라가지 못한 황어들은 물박에서 서서히 죽어가거나 어도 아래 아무 곳에나 산란을 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다에서 돌아오는 황어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이는 황어 한 개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황어들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면 황어나 황어알을 먹이로 하는 수달이나 다른 어종과 같은 상류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마찬가지로 하구생태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현재 연곡천의 생태계보호 활동은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지자체에서도 정기적인 관리는 하고있지 않는 듯하다.

연곡천 생태계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황어들을 다시 그들의 산란장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황어뿐만 아니라 연곡천의 모든 생물들을 위한 진짜 이 필요하며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준 콘크리트 포장길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준 비포장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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